‘옷정리’는 옷장 속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행사다. 2회까지는 그래픽디자이너 양민영의 개인 옷을 정리하는 행사였는데, 옷을 사러 왔던 여성들의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3회부터 좀 더 흥미롭게 전개하게 됐다. 여성 작업자들의 옷을 팔면서 그들의 작업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그즈음 여성 창작자들의 작업은 왜 두드러지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어요. 주변의 실력 있는 여성 작업자들만 봐도 작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옷정리’가 개인의 작업을 보여주기에 효율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참여하는 데 부담이 없기도 해서 주변의 작업을 하는 분들과 평소에 관심 있게 지켜보며 더 조명 받았으면 하는 작업자들에게 옷정리 참여를 제안했어요. 내놓을 옷이 많지 않다는 사람도 있고, 정말 옷을 좋아하는 패션 피플까지 참여해 다양한 라인업이 완성됐죠.”(양민영) 그렇게 ‘쌈지부터 아크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옷정리3이 을지로 ‘ONEROOM’에서 열리게 됐다. 얼핏 플리마켓 같지만 형태는 편집 매장에 가깝다. 옷을 내놓은 셀러들은 현장에 없다. 양민영은 그녀들에게 받은 옷을 하나하나 분류해 행어에 걸고 옷마다 직접 디자인한 은색 태그를 걸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참여한 작업자의 소개와 옷에 얽힌 사연이 담긴 작은 책자를 배치해 일반적인 플리마켓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했다. 현재 옷정리의 공동 기획자인 위지영은 당시 참가자로 참여하는 동시에 현장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옷정리믹스셋’을 만들어 행사 기간 내내 틀었다.
거듭되며 재정비된 옷정리는 올 8월 문화역서울284TMO에서 4회 차를 맞이했고 디자인, 일러스트, 사진, 건축, 순수미술 등 여러 분야의 여성 작업자 34명의 옷 1천1백여 벌을 판매했다. “옷정리4에서부터 참여 작가들의 작업물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행사 기간이 약 3주 정도였는데 일단 좋은 옷을 저렴한 가격으로 ‘득템’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옷을 구경하기 바쁘더라고요. 행사 2주 차부터 작업자들의 작업물을 판매하며 세일을 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짰어요.”(양민영) “둘이서 그 많은 옷을 전부 정리하려니 힘에 부치긴 했지만 태그를 붙이고 우리가 정한 기준으로 분류하다 보니 점점 재밌어서 오픈 전날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어요. 앞쪽부터 옷의 컬러별로 그러데이션을 주면서 디스플레이 했는데 다 해놓고 보니 진짜 편집 매장 같아서 자화자찬한 기억이 나네요. 하하.”(위지영)
본업이 따로 있는 둘에게 옷정리는 순전히 옷에 대한 애정만으로 이룬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와 친구들 모두 옷을 좋아해요. 오랫동안 좋아하고 입어왔으니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브랜드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는 쌓여 있죠. 보통 어떤 것의 ‘덕후’라고 하면 그걸 써먹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옷을 이렇게나 좋아하고 옷이 많은데도 여태 써먹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또한 어떻게 보면 지적 자산인데 말이죠. 그래서 옷정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커요. 지영 씨와 일을 하면서 손쉬웠던 건이 브랜드가 어떤 이미지이고 무슨 브랜드와 섞여도 좋은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어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예쁜 옷을 구경하고 둘이 이 옷이 왜 좋은지 이야기 하다 보면 피로가 다 풀렸죠.”(양민영)
옷정리4에서 위지영은 유리와 은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판매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현재 ‘크립토 스튜던트(CRYPTO TUDENT)’라는 액세서리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번 행사를 발판으로 두 사람은 더 많은 여성 작업자들과 함께 내년 옷정리5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옷정리가 아닌 양민영의 개인 작업은 meanyounglamb. com에서, 위지영의 음악은 soundcloud.com/jiyoungwi에서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