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시네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했던 <최선의 삶>. 동명의 임솔아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때론 아이스크림 같고 때로는 스크램블 속 껍질 같은 열여덟 우리들의 관계와 미묘한 감정이 섬세하게 떠오른다. ‘걸스데이’ 출신 배우 방민아와 모델 한성민, 괴물 같은 신인 심달기 라는 예측 불가능성은 탄탄하고 매력적인 연기와 조화로운 호흡으로 감독 이우정의 심미안을 증명했다.
강이(방민아), 소영(한성민), 아람(심달기)은 기차가 지나갈 때 함께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친구 사이다. 집을 나와 모텔에서 알사탕에 소주를 마시며 밤을 지새우는 미성년자들이기도 하다.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소영은 모든 일을 순조롭게 만드는 치트키를 쥐고 태어난 듯하다. 버려진 것들에 연민을 느끼는 아람과 그런 친구들에게 휩쓸리듯 살아가는 강이. 관계의 저울은 소영에게로 자연스럽게 기운다. 익숙한 불편함 속에서 강이는 고무줄 같은 관계를 끝까지 늘린다.
학교에도 집에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바깥으로 향한다. 거리에는 위험이 널려있다.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삼켜지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지켜주며 불편하고 위태로운 시간들을 함께 지난다.
영화 속 어른들은 철저히 외부에만 존재하고 감정은 일방적으로 표현한다. 엄마의 종교는 무관심의 증표 같고 아빠와 선생의 한 마디는 그저 흩어지는 소리에 가깝다. 이상하고 무섭고 새로운 경험들 끝에 소영은 강이와 아람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선택하고 과거를 부정하듯 폭력을 통해 강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강이는 그 시절이 그립고 소영과 아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을 증오하며 자신이 결정한 최선의 선택을 실행한다.
<최선의 삶>은 10대들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얽힌 가운데 그것이 어떻게 학교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반대로 학교 폭력이 얼마나 복잡하고 두터운 레이어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예민하게 보여준다. ‘트리거’가 될 만한 요소들은 최소화하고 감정이 자라나는 과정은 치밀하게 표현된다. 실제 해당 인물인 듯 보이는 세 사람과 각 캐릭터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대사들이 영화에 완성도를 더한다.
이 영화는 읽지 말고 봐야 한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눈빛와 몸짓과 표정을. 모든 것이 지겨운 듯한 한성민의 표정과 심달기의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텅 빈 눈으로 위태로운 감정을 오고가는 방민아, 그 시절의 막막함과 이상함과 터질 듯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우정 감독의 방식을. 이 영화로 방민아는 제 20회 뉴욕 아시아 영화제 ‘라이징 스타’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