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단지 거기 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윤이형의 단편 소설을 모은 <작은 마음 동호회>에서는 매 작품마다 도드라지는 입장이 있다. 주부, 레즈비언, 40대 비혼 여성, 트렌스젠더,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 자폐인, 가해자의 부모, 아이를 잃은 엄마. 그러나 차가우리만치 거칠게 범주화된 이 단어들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절반도 보여주지 못한다.
글을 쓰는 주부들끼리 모여 잡지를 출판하는 ‘경희’는 과거의 친구이자 현재는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서빈’과 다시 마주친다. 달라진 두 사람의 삶은 각자의 방향으로 견고해지며 벽을 만들지만, 우리가 갈라진 길에서 교차점은 영영 없는 걸까?
매 작품마다 해당 인물로 완전하게 분하는 배우처럼 윤이형은 소설 속 인물과 그가 처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있을 뿐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 자기검열이라는 방지턱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다. ‘레즈비언인 내가 아이를 좋아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승혜, 친구들은 학부모가 된 지 오래고 함께 하는 젊은 여성들의 분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고 통장 잔고도 넉넉지 않은 마흔 셋의 나를 ‘황망하게 바라보는’ 재경, 아이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자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남자.
윤이형은 삶을 이루는 작은 균열 그 사이 혹은 그것을 한 축에 걸치고 우리들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균열은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잦고 많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무엇으로부터의 균열인지, 균열이 아닌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갈수록 준들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간다. 섞이고 뭉개지고 녹아 급기야는 흘러내린다. 어찌 보면 그들 각자는 거인을 이루는 한 덩어리씩의 신체 부위 같기도 하다.’ (‘님프들’ 중.)
어떤 범주로 묶이는 삶도 그 범주를 가리키는 단어처럼 단순할 수 없다. 그 안에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삶이 있다면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회에 의해 용인되지 않은 삶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다름’의 경계에 섰을 때 돌아서는 것 말고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끝내 건너지 않았던 경계선 너머로, 윤이형은 등대처럼 서서 곳곳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