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대 미국 서부의 깊은 숲 속. 카메라는 낙엽 쌓인 젖은 땅에서 자라난 풀과 나무 사이를 비추며 인물의 시선을 따라간다. 주인공 ‘쿠키’는 식량을 찾는 중이다. 사냥꾼들에게 식량을 조달하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쿠키는 섬세한 손길로 일용할 버섯을 따고 뒤집힌 도마뱀을 제자리로 놓아준다. 여느 때와 같이 나선 숲에서 러시안들로부터 도피중인 중국인 노동자 ‘킹루’를 만나 돕게 되고, 둘은 오리건의 한 마을에서 재회한다.
19세기 미국 서부극 <퍼스트 카우>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총으로 약탈하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부 개척 시대에 가진 것 없이 맨 손으로 생을 일궈나가야 했던 쿠키와 킹루의 삶을 통해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일이며 가끔은 꿈을 꾸기도 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이곳은 아직 역사가 닿지 않은 곳이야. 우리 방식대로 역사를 맞을 수 있어.” 킹루의 대사처럼 분명하게 존재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최초의 삶이다.
이들은 모두 자연 안에 있다. 집을 지을 재료와 식량은 산과 강에 있고 동물들은 어디에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돈이 되는 일을 하고 때로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며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일구어나간다. 감독 켈리 라이카트는 유구하게 이어져온 본능적인 삶을 긴 테이크로 그저 보여주는 일에 집중한다. 그의 시선 안에서 만물은 흘러야 할 곳으로 흐르고 있어야 할 곳에 머문다. 물과 밀가루로만 만든 빵이 아니라 우유가 들어간 ‘버터 밀크 비스킷’을 먹고 싶어 하는 쿠키의 욕구 또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는 쿠키와 킹루가 마을의 유지인 ‘팩터’ 대장의 암소에게서 밤마다 몰래 우유를 짜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권력자 팩터의 삶과 사고방식이 노동자들의 그것과 대비되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러나 <퍼스트 카우>는 오직 생존에 대하여 강렬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감독은 쿠키와 킹루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인간상이 포개어지는 과정을 조명하고 인디언, 동양인, 동물이 다양하게 섞여 사는 마을의 조화로운 순간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쿠키와 킹루의 우정, 그들의 작은 선택들은 감독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보여준다. 빛이 들지 않는 방향을 향해 꾸준히 카메라를 비춰온 감독 켈리 라이카트는 <퍼스트 카우>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정식으로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