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컨텐츠 속에서 좋은 작품을 판별할 줄 아는 지식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진 이는 더욱 귀해진다. 저자 목정원은 넘치는 공연예술 가운데 비평을 쓸 이유가 있는 질문과 진실을 담은 작품을 선별해 글을 쓰는 사람이다. 비판이든 찬사든, 삶에 파문을 던지는 무언가를 지닌 작품일 것이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아침달)은 저자에게 강렬함을 남긴 작품들을 그가 만난 사람과 공간 안에서 엮어낸 산문집이다.
영화나 책의 비평과는 달리 공연 비평을 쓰는 일은 우선 극장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관객들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그 특수한 공간에서 실재하는 몸들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내보인다. 러닝타임이 지나면 작품은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모든 공간에는 그곳을 거쳐 갔거나 현존하는 몸들이 있기에, 공간에 대한 사유는 자연스레 몸을 향해 나아간다. 몸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이유로 슬프고 아름다워진다.
저자는 작품에 대한 전문적이고 개인적인 감상에 공간-몸-사라짐의 사유를 덧대어 보편으로 확장시킨다. ‘비극의 기원’을 설명하며 극에서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을 거슬렀다 삶의 근원적인 비극성으로 돌아오고, <돈 지오반니> 속 ‘꽁띠뉴에’라는 곡을 말하며 시대착오적 고전에 필요한 이 시대의 윤리와 우리는 어떤 노래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진다.
몸은 사라짐과 별개로 또한 훼손되기 쉽다. 저자는 고전 속에서 지워지거나 도구화된 여성의 존재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짚어내 현재와 잇고, 여성의 몸과 삶에 관해 강렬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높여온 논쟁적 작가 ‘앙헬리카 리델’을 소개한다. 이는 사라진 몸,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모든 소수의 몸들과 그에 깃든 슬픔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모든 몸의 결말은 정해져있지만 결국 ‘몸’을 가진 존재이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슬픔을 바라보고 같이 운다. 그건 때로 어떤 몸을 살게 하는 일이다. 도달한 사유는 결국 단 하나를 지시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 희극과 비극이 뒤엉켜 있는 삶 그 자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