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는 코트를 벗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땀범벅이 되어도 벗는 일이 없다. 야스의 부모님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개신교 신자들이다. 엄마는 야스에게 말한다. “넌 정말 다른 행성에서 온 애 같아.” 야스는 엄마가 자신을 태양계로 돌려놓지 않아 외롭다.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소설 속에서 화자인 아이는 대부분 지나치게 성숙하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수용하곤 한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 속 야스는 그저 10살 아이로 존재하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보고 느낀다. 감추려 노력해도 사소한 눈빛 하나로 부모의 감정을 직감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첫째오빠 ‘밋히스’가 죽으면서 야스의 가족에게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긴다. 부모에게 드리운 그림자는 남은 아이들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을 안기고 아이들은 조금씩 비틀리며 자라난다. 오빠의 죽음 이후 야스는 마주하는 모든 죽음을 확대시킨다. 마른 호박벌, 차에 치인 고슴도치, 죽어버린 토끼. 언젠간 다가올 부모의 죽음 또한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죽음에 대한 사고는 내가 여기에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부모가 지어놓은 단단한 세계 속에서 야스는 살아있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각들에 압도된다. 동물과 인간의 몸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야스는 코트 속 자신의 몸에서 더러운 것이 나오거나 더러운 것에 닿지 않도록 강박적으로 몰두한다. 역겨움, 그보다 강렬한 호기심이 들쭉날쭉 머릿속을 오간다.
자라는 것에 울타리를 쳐두면 다른 방향으로 자라난다. 야스는 끊임없이 욕망하고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좁은 자신의 세계 바깥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이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 너머를 향항 갈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미 존재하는 무엇으로도 자신을 규정할 수 없는 야스는 여동생의 비뚤어진 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군가 (대개 남자가) 나를 구출해주기 이전에 스스로를 구출하는 방법을 찾는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예민하게 포착한 이 작품으로 작가는 스물 여덟의 나이로 2020년 역대 최연소에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