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17살 때 미싱을 하러 혼자 서울에 왔다. 그 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점심시간에 근처 백화점에서 김밥을 사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는 이야길 한다. 커서야 그것이 엄마가 자신에게 한 유일한 사치였음을 이해한다. 엄마의 오빠들과 남동생은 모두 대학에 갔다. 1970년대, ‘여자는 공부하는 거 아니’라는 집안 어른의 말로 생활전선에 내몰린 수많은 10대 여성들이 청계천 평화시장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시다’로 불리며 좁은 공간에 무릎 꿇고 앉아 하루 16시간 씩 미싱을 돌렸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은 그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에나 있는 노동하는 여성들을 입체적으로 기록하는 매체는 많지 않다. 서민의 일상을 다루는 TV 다큐멘터리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그들의 삶이 어떤 영화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일찍이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해온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동시에 19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동권을 위해 투쟁한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었음을, 그들이 한국 근현대사와 노동사의 영웅이자 뼈아픈 증인임을 보여준다.
망설임 끝에 다큐멘터리에 출연을 결심했다는 여성들은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혹해 (당시엔 누구인지도 몰랐던) 故전태일 1주기 행사장에 갔던 일을 기억한다. 곧 그들의 머릿속에 ‘근로기준법’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힌다. 깨어 있는 것도 자는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미싱을 돌리다 ‘잠을 좀 자야겠어서’ 도망친 어느 날의 일기를 울면서 읽은 한 여성은 ‘근로기준법’이라는 단어가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곧 전태일의 동료들과 어머니 이소선이 만든 ‘청계피복노조’에 가입하고 노동조합이 만든 ‘노동교실’에서 중등교육을 받는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청계천으로 온 그들에게 노동교실은 배움에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 이상이었다. 일상과 취미를 나누거나 훌쩍 여행을 떠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그곳 뿐이었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사업주들과 국가는 갖은 구실로 노동 교실을 폐쇄 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곳이 단순히 ‘노조’가 아니라 삶의 일부 였다고 회고하는 그들은 노동 교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일도 불사한다. ‘제2의 전태일이 필요하다면 그건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창틀에 서서 경찰들을 내려다보던 16세 여성은 우리가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중년의 얼굴로 그 날을 회상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청계피복노조원들이 만나 사진과 대화를 통해 당시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어떤 시절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끔찍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신념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이들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여성의 긴 노동의 삶 가운데 한 시절을 회고한 이 영화는 영화 밖에서, 또 영화 이후에도 계속 되는 여성들의 조명된 적 없는 노동을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