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해에 이어 2021년 김수영 문학상 역시 비등단 시인에게 돌아갔다. 최재원 시인의 작품을 선택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는 심사평은 시집을 읽어보면 곧 이해된다.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는 여름 풍경 속에서 가볍게 시작한다. 그러나 화자는 죽은 매미를 밟을까봐 땅만 보고 걷는 사람, 그러다 끝내 매미의 시체를 밟고 충격에 휩싸여 매미와 몸이 바뀌는 사람이다. ‘시적인’ 무언가에서 벗어나 사투리, 욕, 줄임말, 대중 가수의 이름 등이 등장하는 시들은 몰입도를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삶, 특히 여성의 삶과 몸에 대한 강렬한 사유를 남긴다. ‘내가 가끔 흰자를 낳을 거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냉>, 성매매 여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호등 건너면 보라색 별이 있다> 등의 시편들의 중심에는 ‘여성의 몸’이 있다. 종내에는 ‘몸 밖으로의 완전한 이사’를 꿈꾸는 화자가 등장한다. (<말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꾸밈없는 문장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의 감각을 포획하려는 본능적인 시도로 느껴진다
미국 프리스턴대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최재원 시인은 한겨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숫자나 기호처럼 불변하는 것을 원했지만 내가 계속 변화하는 인간의 몸을 가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런 모순을 미워하고 사랑했다’고 말한다.
최근의 현대시는 다양한 형태를 시도한 끝에 희미한 이미지만 남거나, 현란하고 정성 어린 문장 안에 그저 빛만 남기거나, (서사가 있다면) 어리둥절한 태도로 세상과 미세하게 어긋나는 나이브한 화자가 주를 이루었다. 이 경향에 최재원은 섞이지 않는다. 자신의 시를 특별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나 비대한 자의식이 만드는 자기 연민, 그러니까 자신이 자신임을 의식하는 일에 그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끝까지 돌파해가는 게 아니라 팩맨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간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