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아주 천천히 예열된다. 1983년 단편 <과일 껍질>을 시작으로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를 선보였던 감독 제인 캠피온은 급할 것 없다는 듯, 총 5부에 걸쳐 저마다 분명한 이유로 자리한 장면과 대사들을 섬세하게 엮어나간다.
1925년 미국 몬태나. 척박한 산세에 둘러싸인 목장에는 흙이 질펀하게 묻은 소들이 풀을 뜯는다. 말 위에서 밧줄을 휘두르는 카우보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흔히 봐왔던 서부극 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카우보이들의 성취가 아닌 그 시대의 벌어져 있는 틈새에 포커스를 맞춘다.
버뱅크 형제는 25년 째 함께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형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상대적으로 내성적이고 섬세한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를 못마땅해 하며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미망인 ‘로즈’ (키얼스틴 던스트)와 조지의 결혼 또한 반길 리 없다. 게다가 로즈에겐 게이로 놀림 받는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가 있다. 결혼 후 버뱅크 형제의 집에서 살림을 시작한 로즈에겐 지옥 같은 나날이 펼쳐진다. 남편 조지는 상류층 출세 욕망으로 자주 집을 비우고 필은 마치 학교 폭력 주동자처럼 로즈를 못살게 군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여성이 어떻게 신경쇠약에 이르고 그 신경증이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는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로즈는 멀리서 필의 구두에 달린 방울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쪼그라들듯한 위협감에 시달리고 이는 편두통과 알콜 의존으로 이어진다. 로즈에 대한 필의 혐오와 필을 향한 로즈의 공포감은 완벽에 가까운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로즈와 함께 불규칙한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남성의 권위와 폭력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로즈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남성들은 자연 한 가운데 호수에 뛰어들어 자유로이 알몸 수영 즐긴다.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피터에게도 필은 위협적인 인물이지만 머무는 동안 피터는 필의 내밀한 비밀을 알게 된다. 이는 궁지에 몰린 피터가 엄마와 자신을 위해 하게 될 선택의 키가 된다.
인물들 간 팽팽한 심리 묘사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감독의 연출은 모든 시대에 유령처럼 살아있는 뿌리 깊은 혐오의 역사를 그저 ‘입 다물고 보게 만드는’ 탁월한 방식이다. 이 작품은 2022년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하며 1920년대의 이야기임에도 현재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음을 입증했다. 넷플릭스에서 관람이 가능하지만 사운드가 무척 중요한 영화이므로 극장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