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티탄>은 수상 직후부터 1만 여명의 국내 관객을 동원한 지금까지도 호불호와 평이 뚜렷이 갈린다.
주인공 ‘알렉시아’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머릿속에 티타늄을 심는다. 성인이 되어 자동차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그는 남성들의 관음증적인 시선 안에서도 어쩐지 자유로워 보인다. 오직 금속에 성적으로 흥분하고 자동차와의 섹스로만 오르가즘을 느끼는 페티시가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 위협적으로 자신을 미행해 성폭력을 저지르려는 남성을 죽인 알렉시아는 사실 연일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의 범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이코패스적 살인을 연달아 저지른 그는 경찰을 피해 외형을 바꿔 자신이 실종 아동 ‘아드리앵’이라고 경찰에 거짓 진술을 하고 오랜 시간 아들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 ‘뱅상’을 만나게 된다. 한편 자동차와 섹스한 이후 알렉시아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른다.
여성인 주인공이 폭력적인 면을 지녔을 경우,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서사는 그 폭력성이 엄마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알렉시아가 무책임한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애정 결핍이 있음을 시사한다. 남성과 여성 가운데 누구에게도 끌리지 않는 무성애자 알렉시아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을 지우고 남성으로 살아가는 동안 커져가는 배를 거부하고 튀어나온 가슴을 부정한다. 동시에 낯선 아버지가 전해주는 온정과 뱃속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은 그 모든 혼란을 잠재울 만큼 강렬하다.
데뷔작 <로우>에서 비건으로 자라난 여성이 식인을 하게 되는 내용을 다뤄 평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의 스타일은 확실히 다르다. 근래 주목 받아온 여성감독들이 고요하고 치밀하게 삶을 응시하며 깊은 에너지로 파동을 일으키는 방식을 취했다면 쥘리아 뒤쿠르노는 훨씬 과격하고 원색적이다. 어떤 장면은 불쾌하리만치 적나라하다. 이 시대의 창작자라면 족쇄처럼 하게 되는 끝없는 자기 검열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인물, 대개는 여성이 담고 있는 욕구와 분노와 이상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배덕하고 불손한 방식으로 기존의 질서를 해체한다.
혹자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방식으로는 무엇에도 가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결말로 치닫을수록 알렉시아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로 출산을 앞둔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몸을 떤다. 8기통 엔진을 단 것처럼 익숙한 질서 바깥으로 거침없이 나아간 감독은 가장 인간적인 것을 찾아 손에 쥔다. 남성과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기에 우리가 지니고 있는 금속처럼 단단한 따듯함과 사랑을. 쥘리아 뒤쿠르노는 칸 영화제가 74번 치러지는 동안 황금종려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