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관절염을 앓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대개 노인 혹인 부모 세대의 누군가를 떠올린다. 대화는 자연스레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그런데 관절염을 앓고 있는 사람이 20대 여성이라면? 그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된다. “어쩌다가? 유전이래? 사고인가?”
<젊고 아픈 여자들>의 저자 미셸 렌트 허슈는 20대에 고관절 수술, 비만세포 활성화 증후군, 라임병, 갑상샘암, 노인성 속쓰림 등의 건강 문제를 겪었다. 그에게 20대는 티비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여름 햇살 아래 그을린 피부, 한 밤의 불타는 로맨스, 생기 넘치는 눈동자가 아니다. 그의 20대는 매 순간이 언제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 데이트 상대에게 병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되어 아무 식당에나 가지 못한다는 것을 언제 말해야 할지, ‘목발 짚기엔 당신 너무 젊은데’ 같은 말에 뭐라고 대처해야할지 고민하고 분투하는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에 앞서 투병과 치료를 반복하며 흔히 20대에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여러 기회ㅡ 인도 여행, 대륙 횡단, 취업 등 ㅡ에 제한이 생기고, 또래 친구들보다 몇십년 일찍 죽음을 실감하며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건 물론이다.
작가는 자신과 같이 20대부터 신체적, 정신적 질환과 장애를 겪어온 여성들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 한다. 언급한 모든 일 외에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것은 ‘젊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자신이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혼란이다. 학생도 완전한 성인도 아닌 20대에 ‘병’은 정체성 혼란을 가중시키며 불안과 우울을 비롯한 여러 정신적 질환을 야기하기도 한다. 또래 친구들과 같은 일을 같은 정도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낙오감과 자괴감을 일으키고 이는 종종 게으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작가가 인터뷰한 많은 여성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동료나 상사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게 싫어서, 가시적인 장애가 있다면 일자리를 잃기 싫어서 주어진 것 이상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곤 했다고 말한다. 병은 커리어와 그 기회에 다각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영화에서처럼 하얀 병실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밖만 바라보기엔 치료와 약에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유색인이거나 성소수자의 경우 마주해야 하는 편견은 훨씬 복합적이다. 젊고 아픈 유색인 여성은 가장 안전해야하는 병원에서조차 그들의 통증을 믿어주지 않는 경향이 있고 종종 약에 중독된 여자로 의심 받기도 한다. 젊고 아프고 유색인에 성소수자라면 파트너와의 임신 계획에 대해 병원으로부터 과도한 참견을 받을 수도 있다. 장애를 가진 트렌스젠더일 경우 마주하게 되는 사각지대는 훨씬 넓다. 작가는 여러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기회의 불평등, 그것이 그들의 삶에 끼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지속적인지를 강조한다. 이 밖에도 여성이 주요 질병 리서치에서 얼마나 배제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와 의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젊은 여성들, 젊고 아픈 여성의 임신 등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가 끝까지 이어진다.
여성, 나이, 질병 세 가지 정체성에 대해 복합적이고 장기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결국 사회에서 ‘기대되는 여성상’이 여성을 얼마나 질식 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 없다는 말은 쉽다. 행동하려면 다른 시선과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을 포함해 아픈 20대를 보낸 여성들의 생각과 뚜렷한 가치관을 전한다. 모두가 공평하게 죽음을 향해 갈 때, 여성들이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