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중성적인 목소리는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휘고 꺾이고 끌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김푸름의 EP <16>은 열여섯 살에 느낀 감정을 일기 쓰듯 풀어놓은 데뷔작이다. 수록된 네 곡 모두 김푸름이 만들었는데 기타, 피아노 등의 악기와 전자음이 섞인 곡들은 개인적인 세계를 파고들기보다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지점들이 있다. 반짝이는 사유가 드러나는 가사에는 열심히 읽고 생각하는 뮤지션이 오롯이 드러난다. 어긋나거나 비틀린 곳에서 자라난 물음표를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누군가의 눈동자 속 비친 나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비춰주는 거울 속에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라는 가사로 끝나는 타이틀곡 ‘검은색 하얀색’은 도화지처럼 하얀 상태로 태어나 검은색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 ‘비둘기와 고양이’는 머릿속 생각들을 단편소설처럼 쓴 후 가사로 옮긴다는 그의 방식이 잘 드러난 곡이다. ‘꺼벙이 안경’에서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잃어가는 자신을 매력적인 가사로 풀어낸다. 10대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유일한 곡인 ‘졸업식’은 실제 중학교를 졸업하며 우정을 노래한 곡으로 친구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세상이 네게 등을 돌린다면 나도 네게 등을 돌릴 거야 그럼 넌 그대로 내게 업히면 돼’ 순간은 기록을 통해 영원이 된다. 그럴 가치가 있는 마음들을 김푸름은 삶에서 예민하게 포착하고 노래로 만든다. 모든 곡에 뮤직비디오가 있고 타이틀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 모두 김푸름이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을 초대해 휴대폰으로 직접 촬영했다.
빠르기와 이야기는 각각 다르지만 김푸름이라는 하나의 틀을 통해서 네 곡은 한 데로 온전히 뭉쳐진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뿐인데 듣는 이의 마음에 정동을 주는 건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김푸름은 그걸 가졌다. 김푸름은 종종 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