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던 소녀가 뒤돌아보며 미소 짓고 있다.

 

형형색색의 제복을 입고, 깃발을 휘날리며 발 맞춰 나아가는 수십 명의 소녀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드럼 메이저레츠 Drum Majorettes’를 만나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920년대에 처음 등장한 드럼 메이저레츠는 스포츠 행사나 축제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1970년대부터는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아 대회를 통해 팀별 순위를 가리며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유행의 정점에 도달한 후 점점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 드럼 메이저레츠를 여전히 지켜가는 소녀들이 있다.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온 사진가 앨리스 만Alice Mann은 이들의 모습을 포착해 ‘드러미스 Drummies’라는 이름 아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복을 갖춰 입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드럼 메이저레츠 소녀들.

 

‘드러미스’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현대사회의 여성성과 여성에게 주어지는 권한을 주제로 진행 중인 작업의 일환으로 ‘드러미스’를 기획했다. 스포츠 행사나 축제에서 드럼 메이저레츠의 퍼포먼스를 본 경험이 있어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5년 전, 우연히 드럼 메이저레츠를 다룬 기사를 접한 뒤 이들을 사진에 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소녀들이 자신을 드럼 메이저레츠의 일원으로 인식함으로써 성취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한 팀에 직접 연락해 소녀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이후 대회 현장을 찾아가며 적극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 결과 11개 팀과 함께한 사진들을 엮은 프로젝트 ‘드러미스’가 탄생했다.

드럼 메이저레츠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다. 현재 드럼 메이저레츠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드럼 메이저레츠는 1970~1980년대에 가장 성행한 이후 비주류 문화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드럼 메이저레츠를 낡은 문화로 여기며, 이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지닌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곳곳에는 드럼 메이저레츠에 열정을 품은 소녀들이 아직 있다.팀 사이의 경쟁도 전성기 못지않게 치열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난 소녀들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었나? 일단 훈련을 위해 갖춰야 할 요소가 많다. 전문가가 만든 화려한 제복, 깃발과 곤봉을 비롯한 도구, 팀원 전체가 연습할 수 있는 널찍한 장소가 필수다. 이들의 루틴은 한 번 시작하면 10~15분간 이어졌고, 팀원마다 담당하는 파트가 달랐다. 최대 40명으로 구성된 팀이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 소녀들은 매주 수십 시간의 연습을 함께 했다. 대회를 앞두면 주말과 공휴일에도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토록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드럼 메이저레츠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녹록지 않은 훈련 일정을 소화해낼 정도로 무언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사람만이 드럼 메이저레츠 활동을 할 수 있다. 열정 가득한 소녀들이 한 팀으로 어우러져 소속감을 드러내는 순간을 ‘드러미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주 목격했다.

소속감을 가장 강하게 감지한 순간은 언제였나? 드럼 메이저레츠 대회가 열린 날, 한 팀의 팀장이 단독 공연을 앞두고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코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격려했고, 팀원들은 다 같이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쳐주었다. 서로 용기를 북돋우는 모습이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연대는 그들이 이룬 공동체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드럼 메이저레츠를 촬영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나? 소녀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최대한 반영하려 애썼다. 이들은 사진을 통해 본인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그게 내가 이들과 함께하며 놀란 지점이다. 소녀들의 명확한 바람을 실현해주기 위해, 이들이 자신을 가장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촬영 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나와 소녀들이 사진가와 피사체의 관계를 넘어섰다고 느꼈다. 난 항상 나의 카메라 앞에선 이들에게 정서적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드러미스’가 나만의 작업이 아니라 ‘우리’의 협업이라고 생각한다.

당신과 드럼 메이저레츠의 협업은 결국 무엇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나? 드럼 메이저레츠 활동은 소녀들에게 자부심과 유대감, 즐거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드럼 메이저레츠를 통해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계속 나아갈 힘을 얻었다. 스포츠 관련 활동 기회는 지금도 여전히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나. 하위문화로 여겨지는 드럼 메이저레츠를 순수한 마음으로 이어가는 소녀들이 여성의 열정과 투지를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사진가로서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나가고 싶나? 사회적 문맥을 이해하고, 미묘한 차이를 실감하게 하는 이미지를 창조하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사진이란 매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이라 여겨지는 것에 도전하며 세상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때, 사진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내 작업이 다큐멘터리 영역 너머에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를 통해 다른 현실을 암시할 수도, 누군가의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소녀들이 신은 부츠에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저마다 가진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드럼 메이저레츠 팀원들.

훈련 중인 소녀들의 얼굴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떨리는 마음으로 퍼포먼스의 시작을 기다리는 소녀들

부단한 연습을 거쳐 완성한 드럼 메이저레츠의 퍼포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