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지 갤러리
THE PAGE GALLERY
나점수
Na Jeom Soo
더 페이지 갤러리는 키아프 서울에서 회화, 조각, 설치미술 등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해외 작가로는 초현실적 오브제를 만드는 미국 작가 미샤 칸(Misha Kahn), 2007년 터너상 후보에 올랐던 설치미술가 네이선 콜리(Nathan Coley), 유리 그림 작가 롭 윈(Rob Wynne), 한 화면 안에 극사실주의 구상화와 추상화를 담는 무스타파 훌루시(Mustafa Hulusi)가 함께한다. 한국 작가는 박은선, 변종곤, 세비가, 이수경, 하이라이트 섹션에 포함된 나점수 작가를 선정했다. 나점수는 나무가 주재료인 추상 조각으로 나무가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나무라는 물질은 변화하고 성장하며 순환하는 시간의 속성에 동참하고 있기에 나의 행위 또한 조형의 완성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에 진입하는 과정인 것 같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일 작품은? ‘무명(無名)’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정신의 위치를 표현하고자 했다. 특정 대상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심리
적 상태에 가깝다는 의미다.
작품의 주재료인 나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나? 나무는 덜어내면 가벼워진다. 얇게, 조금 더 얇게 깎다 보면 너무 얇아져서 앞뒤가 뚫려 무게마저 소멸
하는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붙들 수 없는 순간과 흩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품은 물질의 장력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덜어내는 과정에서 나무가 품은
색과 향이 풍기는데, 그 순간 ‘지금’이라는 생생한 상태로 다가와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작품 착상 단계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무엇을 불러낼 것인가? 우선 나무와 만난다. 표면을 보고, 무게를 직감하고, 색을 바라보며, 물질
의 내면에 품고 있을 또 다른 색을 기다리며, 저 묵직한 몸이 나에게 다가오기 전 허공에서 흔들리고 계절의 풍경에 동참한 시간을 조용히 생각해본다.
예술가로서 소중하게 여기는 인생의 경험이 있다면? 동물적 본능을 가진 몸이 일으키는 어떤 정신적 상태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 ‘풀’ 앞에서 한참 머물다 보
면 그곳이 ‘성당’이 된다. 마음이 조용해지는 모든 순간이 고해성사와 같으니, 마음의 거친 소리가 멈추는 순간들이 소중하다.
‘만든다’ 혹은 ‘조각한다’는 행위가 작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예술’이라는 단어는 ‘기예’라는 뜻으로, 기술적 측면을 강조한 어휘다. 만든다는 것은
기예에 가까우니 관념하고 있는 것을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만듦은 무엇을 위해 봉사해야 할까? 조각은 태생이 상징적인 것
이다. 그래서 ‘만듦’과 ‘조각’ 행위로 대상의 모습을 표상하기 위해 적절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 사유의 과정이라기보다 물질을 표상으로
치환하는 기술적 완성도라고 할 수 있으니 기예의 정점에 가까운 일이다. 현재 나에게 작업은 ‘예술’에서술’을 덜어내 ‘예도’적 측면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다. 예도란 태도이며 방향이니 만든다기보다는 ‘다가감’에 가깝고, 조각한다기보다는 ‘덜어냄’에 가깝다.
키아프 서울을 찾은 관람객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떤것을 발견하기를 바라는가? 작품은 단초고 통로다. 압축된 폴더를 여는 것과 같아서 관람객 스스로 경험과 성찰의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것만이 자신의 것이기에 조용히 머물러보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봤으면 한다.
우손갤러리
WOOSON GALLERY
이유진
Yi You Jin
대구 소재의 우손갤러리는 올해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동시 참가한다. 그중 키아프 서울에서는 회화, 조각, 사진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현대미술의 면면을 조명한다. 특히 오묘초, 임노식, 정영호 작가는 아트 페어에 처음 작품을 선보여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이라이트 섹션에 선정된 이유진 작가는 ‘공존’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을 출품한다. 1980년 강릉에서 태어난 이유진은 세종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다 중퇴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뮌헨에서 귄터 푀르크(Günther Förg)에게 사사했으며, 뮌헨 미술원 석사 졸업 후 독일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동양의 정서와 서양의 양식을 적절하게 조화시킨다는 평을 받는 이유진은 장지에 목탄, 파스텔로 그리거나 캔버스에 한지를 입혀 그 위에 페인팅하는 등 동양적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 회화적 요소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반추상 작품에서는 형태를 가두기보다는 열어주는 선의 사용과 과감한 여백의 미가 시원시원한 구성을 이룬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일 작품은? 캔버스, 장지(한지)에 그린 작품들이다. ‘공존’이라는 제목을 통해 인지되는 이미지들을 그림 안의 다양한 주변 환경, 복합적인 상황, 대립 구조 속에서 은유적으로 형상화해 감정 상태의 미묘한 조화를 그려낸 내러티브 회화 작품들이다.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 머무는 환경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하는 환경에서 정체성과 유산의 뿌리를 탐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만큼 다양한 영향과 대조되는 관점을 탐색하며 문화의 요소를 포용하고 동화하려고 한다. 물론 한국인이라는 배경이 나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전기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와 동시에 예술적 측면에서 보면 결국 내면의 복합성이 나만의 은유적, 시각적 언어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오일, 연필, 콩테, 목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점이 눈에 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목탄을 좋아한다. 목탄을 쓸 때면 짧게나마 먹, 붓, 선을 다루는 철학을 배운 소중한 경험이 떠오르고, 매트한 검정의 깊이와 아름다움 그리고 표면의 물리적 현상과 반응을 더욱 또렷이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선, 색, 형태, 메시지 등 수많은 요소 중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라면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을 경계로 인식함으로써 선으로 나뉜 면을 동시에 인지한다.
작가로서 오래도록 지켜가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어느 한쪽 안에서 안전함과 편안함을 누리기보다 복합적 경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밸런스를 찾고 포용하는 태도. 그리고 열린,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위해 습득한 사고 방식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습관을 다시 잊어버리는 노력을 하고 싶다.
키아프 서울을 찾은 관람객이 당신의 작품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바라는가? 나의 시선과 만나는 동시에 각자 자기 안에서 다양한 소리와 이야기를 발견하길 바란다.
갤러리밈
GALLERYMEME
정정엽
Jung Jungyeob
정정엽은 1980년대부터 여성 주의와 생태 주의적 시각을 토대로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폭넓은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여성의 살림 노동과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캔버스에 옮겨 특별한 힘을 불어넣는다. 정정엽의 작품에는 ‘조용하면서도 소란하고, 일상적이면서도 혁명적이며, 포용적이면서도 반란적이다’라는 평이 따른다. 정정엽의 신작을 공개하는 갤러리밈은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세밀한 표현력으로 숲을 그려내는 노경희, 전통적인 동양화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이기영, 자유로운 화풍으로 아트 페어에서 라이징 스타로 꼽히는 만욱 등 동시대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호파 갤러리
HOFA GALLERY
김일화
Kim Il Hua
호파 갤러리는 중국의 조각과 설치 예술가 정루(Zheng Lu), 아일랜드 화가 메리 로네인(Mary Ronayne), ‘씨앗’ 작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김일화 작가와 함께 참여한다. 하이라이트 섹션에 선정된 김일화는 낱장의 한지를 수천 가지 색으로 염색해 햇볕에 말리고, 겹겹이 자른 뒤 돌돌 말아 하나의 ‘씨앗’으로 만든다. 씨앗 하나하나는 더 큰 우주 안의 소우주다. 회화와 조각 사이에 놓일 법한 김일화의 작품은 독특한 입체감과 촉각적 호기심을 자아낸다. 씨앗들이 촘촘하게 모여 이뤄내는 풍경은 감상하는 각도와 거리, 빛의 반사에 따라 질감과 색감이 역동적으로 달라진다. 이는 작품이 놓이는 공간 안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든 변화를 반영하고 포용하도록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