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이어링 의 급부상
어릴 적 귀고리를 참 좋아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넘길 때 은은하게 반짝이는 빛이 느껴지거나 귓불 아래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이 들 때면 진짜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체 피부가 약한 켈로이드 체질이라 채 1년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계속되는 염증과 알레르기를 호소하며 귀고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물론 이번 시즌 출시된 새로운 이어링을 만나기 전까지의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얼리계의 주인공은 반지였다. 볼드한 스테이트먼트 링을 비롯해 얇고 심플한 레이어드 링, 손가락 마디에 끼는 너클링 등 겹치면 겹칠수록 근사한 레이어드 스타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주목해야 할 액세서리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오버사이즈 귀고리다. 귀고리의 유행이 시작된 건 2년 전 즈음이다. 당시는 루이 비통의 여성복 디렉터로 영입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데뷔 컬렉션을 선보이던 때. 아이코닉한 LV 로고를 모티프로 한 메탈 이어링을 디자인해 크게 이슈가 되었고, 세린느에서 출시한 샹들리에풍 이어링과 함께 싱글 이어링 붐을 일으켰다. 실제로 루이 비통 쇼에 등장한 컬렉션 피스보다 조금 더 작은 커머셜 라인의 이어링이 매장에서 판매되었는데, 친한 친구끼리 귀고리 한 쌍을 구입해 나눠 가지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는 후문. 이러한 싱글 이어링의 인기는 좀 더 과감한 디자인의 이어 커프로 이어졌고, 파리에서 열린 앤티크 비엔날레에 피아제의 하이 주얼리, 다이아몬드 이어 커프가 출품될 만큼 귀고리의 디자인은 빠른 속도로 다양해졌다.
이번 시즌에도 귀고리의 활약은 계속될 전망이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 J. W. 앤더슨의 로에베 등 핫한 디자이너들이 이끄는 브랜드에서 다채로운 이어링을 출시했고, 알렉산더 왕과 살바토레 페라가모, 랑방, 디스퀘어드2, 발맹, 마르니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귀고리의 디자인도 천차만별이다. 빈티지한 금속 장식과 진주를 조화시킨 구찌, 커다란 골드 컬러 메탈을 사용한 마르니, 구조적인 조형물을 연상케 하는 로에베, 입체적인 프린지를 모티프로 한 발맹, 경쾌한 디스코 볼을 표현한 프라다, 체인을 이어 만든 알렉산더 왕의 귀고리. 어느 하나 컨셉트나 사이즈가 같은 게 없지만 한결같이 어깨 언저리까지 닿는 ‘롱’ 디자인을 선택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롱 이어링 의 장점은 얼굴형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어떤 스타일의 옷과도 궁합이 좋다는 점이다. 시선을 아래로 분산시켜 얼굴형이 날렵해 보이는 효과가 있고 분더샵에서 전개중인 페르테의 이어링처럼 골드 소재의 가늘고 긴 디자인을 고르면 일상에서도 부담없이 롱 이어링 을 즐길 수 있다.
언제나 패션은 영민하게 진화한다. 최근 손가락까지 덮은 롱 슬리브가 유행하며 반지의 인기가 주춤해졌고, 대신 오프숄더 패션이 주목받으며 롱 이어링 이 급부상하고 있다. 집을 나설 때 머리카락에 가려진 귀까지 체크해야 하는 분주한 아침이 예상되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투자하는 시간만큼 예뻐질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여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