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이 선화 (프리랜서)

이 저자는 아직 상세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So far 이 선화 (프리랜서) has created 51 blog entries.

Peter Pilotto

이번에는 페루다. 쇼가 열린 월도프 힐튼 호텔은 싱그러운 야자수와 푸른 바다 빛으로 채워졌고, 컬렉션은 오리엔탈 무드가 가득한 로맨틱한 분위기였다. 생동감 넘치는 오렌지색을 주조로 카키와 블랙, 핑크, 블루를 곁들인 다채로운 컬러 매치가 펼쳐졌으며 가벼운 니트 원피스와 울로 만든 랩스커트, 화려한 프린트의 실크를 층층이 덧댄 비대칭 블라우스, 사선으로 재단한 바이어스 컷 드레스를 선보이며 모던한 에스닉 룩이 나아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유난히 마음에 든 건 누비 점퍼들. 자수 장식 라이더 부츠와 오버사이즈 재킷을 조합한 심플한 스타일링은 충분히 이국적이면서도 동시대적으로 느껴졌다. 이번 컬렉션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영국 유리공예가 조셴 홀즈의 주얼리. 유연한 곡선 셰이프와 투명한 유리 소재가 이뤄낸 완벽한 하모니를 보며 서로 다른 영역의 콜라보레이션은 늘 옳다는 생각을 했다.

Marques’ Almeida

니나 시몬의 노래가 쇼의 시작을 알렸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미국 싱어의 곡을 배경음악으로 정한 건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이번 시즌 테마 때문. 지난번 실제 친구를 런웨이에 올려 이슈가 된 디자이너 듀오는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체형과 피부색을 가진 모델을 섭외했다. 의상 또한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웠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르는 커다란 체크무늬, 굵직한 스트라이프, 그래픽적이거나 동양적인 도트 패턴, 추상화처럼 보이는 기하학적인 무늬 등 가능한 모든 것을 그려냈다. 하지만 LVMH 프라이스를 수상한 신인 디자이너에게 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그나마 종이를 구긴 것 같은 독특한 텍스처의 슬립을 레이어드한 스타일링과 구조적인 굽이 돋보이는 플랫폼 부츠, 형형색색의 앙증맞은 클러치 백은 소녀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충분해 보였고, 패션으로 패션 이상의 이념을 보여주려 한 디자이너의 열정만은 높게 사고 싶다.

Joseph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몇 시즌 만에 런던을 대표할 만큼 성장한 조셉. 이번 시즌에도 여자를 위한, 여자가 입기 좋은 레디투웨어를 만들면서 최근 패션계의 트렌드를 정확하게 짚어낸 실용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솔직히 지난 S/S 시즌, 발렌시아가와 셀린느를 떠올리게 하는 형광빛 핑크와 블루, 과감한 컬러 블로킹, 실험적인 저지 소재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 또한 조셉만의 감성으로 다시금 풀어냈으며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폴리에스테르나 PVC 유광 가죽마저 웨어러블한 재킷, 트렌치코트로 재해석했다. 루이스 트로터는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며 양성의 공간에 사는 동시대 여성을 떠올렸다고 한다. 루스한 실루엣과 베이식한 컬러 팔레트, 성별을 드러내는 어떤 것도 장식하지 않은 팬츠 수트, 브랜드 고유의 청키한 니트웨어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순조로웠던 컬렉션.

Preen By Thornton Bregazzi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연이어 선보이며 브랜드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프린의 두 디자이너는 자신들의 재능을 좀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두 인물에 집중했고 1980년대 영국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지난 몇 달간 여성 인권 보장을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며 패션계와 정치계가 의도치 않게 가까워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행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면서도, 영민하고 바람직한 시도로 보였다. 재기발랄한 두 디자이너가 풀어낸 페미니즘 역시 칭찬받을 만했다. 풍요로웠던 에드워드 7세 시대의 에드워디안 룩을 차용한 프린만의 뉴 로맨티시즘을 제시했고 긴 소매가 달린 러플 장식 하이넥 블라우스와 캐럿 팬츠, 케이블 니트, 벨에포크풍 퍼플 드레스, 플라워 미디 원피스로 부족할 것 없던 당시의 시대상을 그려냈기 때문. 그리고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닮은 레터링 이어링과 벨트, 영국 아티스트 세라 루커스, 크리스티나 브룸의 감성을 곳곳에 녹여냈다.

Simone Rocha

마치 ‘아우터 제대로 입기’ 지침서를 보는 듯했다. 밀리터리 재킷과 트렌치코트, 페이크 퍼 코트, 윈드브레이커처럼 가을과 겨울 입기 좋은 아우터가 줄줄이 등장했고, 그와 동시에 각 아우터에 어울리는 가방을 드는 애티튜드를 제안했다. 마치 모든 옷을 다른 원단으로 만든 것처럼 변주 가능한 소재가 총출동한 듯했는데, 벨벳과 새틴, 꽃을 수놓은 얇디얇은 오간자, 짧게 깎은 송치 가죽까지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없었다. 각양각색의 아우터만큼 눈길을 끈 건 런웨이 위에 선 모델들. 이번 컬렉션을 위해 피부색과 나이 등 모든 제약을 초월한 캐스팅이 이뤄졌는데 딸이자 엄마, 할머니가 되어가는 모든 여자를 포용하고 싶은 디자이너의 의도를 반영한 시도라고 한다.

Erdem

여느 때보다 이국적인 쇼였다. 캐나다 출신 에뎀이 돌연 동양의 아름다움에 빠진 이유는 무얼까? 해답은 그의 가족사에서 찾을 수 있다. 터키 출신 할머니와 아버지, 미국 출신 어머니, 영국 출신 할아버지, 이렇듯 다종다양한 문화에 노출돼 자란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하지만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판타지 같은 컬렉션을 완성했다. 그 바탕이 된 건 16 세기 터키의 오스만제국.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고급스러운 벨벳과 자카드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여기에 레이스와 시스루, 자수 장식을 더해 제국의 찬란한 유산을 재조명했다. 벨벳 볼가운과 에뎀의 아이코닉한 리본을 장식한 실크 드레스, 고풍스럽게 재해석한 밀리터리풍 코트를 비롯해 런웨이에 등장한 어느 하나 호화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Margaret Howell

패션이란 게 참 알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입나 싶은 옷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고 늘 입기 좋은 베이식한 옷은 흔하다는 이유로 홀대받기도 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마가렛 호웰의 컬렉션은 언제나 흥미롭다. 옷장에 있는 뻔한 옷으로 런웨이를 채우지만 조금도 익숙하지 않고, 매일 입다시피 하는 셔츠와 팬츠의 조합도 늘 새롭다. 이번 쇼에서도 불편하거나 거북스러운 순간은 없었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난해한 스타일도 없었다. 대신 서로 다른 소재를 매치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나 컬러 간의 조화, 셔츠를 입을 때 스카프를 어떤 모양으로 매야 하는지, 또 팬츠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깊이 알아두면 좋은 지식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유익한 시간이라고나 할까. 꼭 한번 시도해야겠다 싶었던 건 셔츠 밑단을 한쪽만 내놓은 내추럴한 스타일링. 시시각각 변하는 패션계에 이런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건 에디터만이 아닐 것이다.

Mary Katrantzou

1940년에 소개된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팬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컬렉션이었다. 영화에 전반에 등장하는 파스텔컬러와 짙은 블루처럼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를 고스란히 차용했고, 낭만적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당시의 시대상을 차분하게 담아냈다. 디즈니사의 귀여운 만화와 누아르라는 상반된 장르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특히 실루엣에 공을 들였는데 1940 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재킷과 미디스커트의 조합, 1920년대를 연상케 하는 롱 앤 린 스타일로 안정감을 줬다. 물론 <판타지아> 를 떠올리게 하는 몽환적이고 사랑스러운 요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퀸과 크리스털 프린지, 입체적인 아플리케 코르사주로 꾸민 원피스는 동화 속 공주님의 드레스처럼 어여뻤고, 옐로와 핑크 퍼로 풍성하게 연출한 체크 코트, 움직일 때마 찰랑거리며 빛을 내는 머메이드 자수 장식 시스루 드레스도 초현실적으로 황홀했다.

Mulberry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멀버리를 여자들의 워너비 하우스로 승격시킨 조니 코카가 이번 시즌에는 브랜드의 역사가 시작된 1970년대에 집중했다. 영국 귀족의 일상과 패션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체크와 빈티지 레이스, 견고한 트위드와 실크 소재, 전원적인 프린트로 컬렉션을 풍성하게 채웠고 동시대적 감성을 더하는 중성적인 오버사이즈와 1920년대를 상징하는 가늘고 긴 실루엣을 적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품위 있으면서도 우아한 레디투웨어에는 심혈을 기울인 액세서리가 더해졌는데 영국 전통 공예의 느낌을 살린 주얼리와 앤티크한 브라스 버튼이 대표적이다. 셀린느의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답게 매 시즌 구매욕을 자극하는 가방 컬렉션을 선보여 온 조니 코카의 백은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승마 선수와 사냥꾼의 신발을 재해석한 주얼 장식 로퍼까지 갖고 싶은 것이 가득했다.

Ports 1961

이번 시즌 포츠 1961은 런던을 오마주하는 의미로 밀라노가 아닌 런던 패션위크에 참가해 첫 번째 쇼를 열었다. 런던에 입성한 걸 기념하듯 브랜드 시그니처 아이템을 총망라한 다양한 스타일을 제안했고 당연히 그 중심엔 쿨하디쿨한 셔츠가 존재했다. 쇼피스의 카테고리는 꽤 단순하다. 자연스럽게 몸을 타고 흐르는 루스한 셔츠와 니트웨어, 그저 손 가는 대로 자르고 이어 붙인 것 같은 구조적인 재킷, 헐렁한 팬츠와 맥시한 원피스 정도. 색과 소재, 패턴 역시 다른 브랜드에 비해 턱없이 단순하지만 쇼를 보는 내내 지루하거나 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었다. 되레 머릿속에 맴돈 생각은 ‘올가을엔 한쪽 어깨를 과감하게 드러내야겠구나!’라는 것. 포츠 1961의 다음 쇼가 열리는 밀라노를 찾을 이유가 생겼다.

Christopher Kane

쇼가 시작되기 하루 전 크리스토퍼 케인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정체불명의 우주선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눈치 빠른 패션 피플은 이번 시즌 그의 컬렉션이 퓨처리즘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알아챘고 연이어 선보인 스페이스 컬렉션의 가방과 스니커즈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디자이너가 이번 쇼를 통해 보여주려 한 건 바로 ‘강인한 여성상’이다. 그 결과 메탈릭한 무지개 밴드로 꾸민 투박한 그레이 코트, 복숭앗빛으로 물든 견고한 다마스크 원피스, 남성복처럼 넓은 어깨 라인을 강조한 셔츠가 탄생했다. 컬렉션 전반에 등장한 의상들의 공통적인 요소는 소매 끝에 달린 커다란 포켓인데, 이 낯선 요소는 이름하여 ‘OCD 포켓’. 흡사 장갑처럼 손을 덮는 독특한 장식으로 런던을 대표하는 천재 디자이너의 위트쯤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여기에 개성 있는 디자인과 정교한 수작업으로 완성한 아플리케, 다채로운 볼거리까지! 패션 종합선물세트 같은 쇼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Burberry

F/W 컬렉션이라는 기존 명칭 대신 쇼가 열리는 때가 2월임을 감안해 ‘2월 컬렉션’ 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런웨이에 오른 아이템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두 번째 버버리 쇼였다. 테마는 영국의 전위적인 조각가 헨리 무어. 비대칭적이고 추상적인 그의 작품처럼 독특하게 자르고 레이어드한 옷이 등장했으며, 수공예 디테일로 꾸민 스웨트셔츠, 볼드한 스트라이프 원피스, 화려한 패턴의 셔츠가 컬렉션을 가득 채웠다. 개인적으로 아카이브에 연연하던 과거보다 흥미롭고 실용적인 결과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버버리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이뤄졌는데 브랜드를 대표하는 하우스 컬러, 개버딘을 소재로 한 남성과 여성 가방 컬렉션 ‘DK 88’ 과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78개의 리미티드 에디션 ‘쿠튀르 케이프’가 그 예다. 쇼가 끝난 뒤 든 생각은 단 하나, 이 모든 걸 곧장 만지고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 다행이라는 것.

JW Anderson

올해는 조나단 앤더슨이 런던 패션위크에 데뷔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런던 출신 신인 디자이너로 불리던 그는 이제 로에베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고, 자신의 레이블을 영국 대표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어느덧 데뷔 10년 차 디자이너가 된 조나단 앤더슨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꽉 채운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생경한 소재와 장식, 규칙이 없는 비대칭 라인이 돋보였으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요소를 과감하게 조합했다. 이번 시즌 그가 디자인한 옷은 과감하기 이를 데 없다. 여성스러운 미디 원피스에 밀리터리풍 포켓을 더하고 가늘고 긴 저지 원피스를 갈갈이 찢거나 입체적인 러플로 장식한 것. 또 치마 밑단에 타조 털을 덧대 드라마틱하게 연출했으며 메탈릭한 체인 디테일로 곳곳에 포인트를 줘 아티스틱한 감성을 보탰다. 누군가에겐 그저 입기 어려운 옷으로 비칠 수 있지만 과감한 시도와 새로움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 런던 패션의 진면목을 확실히 보여준 쇼였다.

Load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