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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 is more.’ 한동안 미니멀리즘을 상징하는 이 문구가 패션계를 대변하다시피 했다. 셀린느의 피비 필로를 필두로 질 샌더, 캘빈 클라인, 크리스토프 르메르 등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런웨이엔 군더더기 없이 잘빠진 수트며 투박한 무채색 셔츠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그 결과, 꽤 오랫동안 간결한 라인의 옷이 상대적으로 쿨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올가을 그 판도가 바뀌고 있다.

 

변화의 중심엔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있다. ‘뎀나의 손에서 탄생한 스트리트 스타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매우 힙한 하이패션 룩으로 추종받고 있다.’ 나 역시 한 매체가 ‘뎀나 신드롬’에 대해 언급한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럭비복을 연상시킬 만큼 어깨가 넓은 베트멍의 후드티와 트랙 팬츠는 꽤 부담스러운 실루엣임에도 이번 시즌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며, 힙스터들은 티셔츠에 깨알같이 프린트된, 섹슈얼한 슬로건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올가을 가장 이슈가 되었던 뎀나의 발렌시아가 데뷔 컬렉션에서 모델이 든 오버사이즈 스트라이프 쇼퍼백은 태국 짜뚜짝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장 가방’과 유사한 디자인인데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으니! 흔한 오브제를 위트 있게 변주해 쿨하게 해체하는 뎀나의 컬렉션이 새로운 신드롬을 낳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역시 ‘로맨티시즘의 미학’을 설파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섬세한 디테일과 화려한 컬러 팔레트를 필두로 여인의 로망을 아름답게 구현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실 미켈레의 옷은 일상에서 입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동화 속 공주가 입을 법한 주얼 장식 새틴 드레스며 솜사탕처럼 둥글게 부풀린 벌룬 소매 코트, 현란한 네온 컬러 퍼 코트까지, 실생활에서 입기 어려운 옷이 즐비한 것. 그런데도 이들의 ‘오버’ 룩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1백 년 후 미래 인류가 입을 옷을 위트 있게 구현하고 싶었어요.” 이번 F/W 시즌 컬렉션 쇼를 앞두고 오프닝 세레모니 디자이너 듀오가 한 말처럼 디자이너들의 기상천외한 상상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룩을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니까.

 

이토록 튀는 ‘맥시멀리즘’을 바탕으로 한 옷을 쿨하게 입는 패션 피플의 이토록 튀는 ‘맥시멀리즘’을 바탕으로 한 옷을 쿨하게 입는 패션 피플의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들은 대담한 컬러 블록과 허를 찌르는레이어드를 진심으로 즐긴다. “패션이 심각하면 재미없잖아요. 올가을 로에베의 금빛 코르셋에 꽂혔어요. 낭만적이지 않아요?” 한 인터뷰에서 모델 한느 가비 오딜이 한 말처럼 패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엔 이 드라마틱한 변화가 꽤 반갑다. 요는,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라는 것! 용기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