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언제나 트렌드의 최전선을 사수하는 트렌치코트. 이번 시즌에도 트렌치코트의 치명적인 매력은 유효한 것을 넘어 그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아주 클래식한 디자인부터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불어넣은 예술적인 스타일까지 그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으니!
먼저 메종 마르지엘라 컬렉션의 오프닝을 장식한 트렌치코트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감을 얻은 존 갈리아노는 앞쪽에 마릴린 먼로가 연상되는 하트 라인을 그리고, 뒤는 자유의 여신상에서 모티프를 얻은 패턴을 레이저 커팅으로 섬세하게 구현해 감탄을 자아냈다. 이렇듯 아트 피스처럼 세심하고 드라마틱하게 완성된 트렌치코트는 발렌시아가 쇼에서도 목격할 수 있는데, 모델 이지가 입고 등장한 이 코트는 무려 세 가지 형태로 스타일링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입는 방법에 따라 여러 형태로 실루엣을 연출할 수 있고 옷에 달린 스카프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른 룩을 즐길 수 있다. 제레미 스캇이 박스용 골판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트렌치코트는 또 어떤가? 빨간색 ‘Fragile’ 스티커가 붙은 룩은 보는 순간 그 기발함에 웃음이 난다.
이토록 보는 것만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아티스틱한 피스도 있지만, 베이식한 트렌치코트 역시 변함없이 매력을 어필한다. 과거 영국 육군 장교의 유니폼에서 출발한 의복으로 실용적인 것은 물론이요, 클래식한 디자인 역시 보장되어 있으니 말이다. 디자인 이 특별하진 않지만 사이먼 로샤의 카키색 벨벳과 디올의 네이비 실크, 막스마라의 캐시미어 등 소재와 컬러만 달리한 트렌치코트들도 제각기 가을을 준비하는 ‘쇼핑심’에 여지없이 불을 지핀다. 트렌치코트가 이처럼 여심을 거세게 흔드는 건 어떤 분위기의 옷차림에도 잘 어울리고,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컬렉션을 찬찬히 살펴보자. 별다른 스타일링 없이 트렌치 코트만으로 승부수를 띄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지금 옷장에 트렌치코트가 여러 벌 있더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올가을 또 다른 트렌치코트의 유혹을 떨치긴 어려울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