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디터로서 추위를 이기려면 패딩과 시어링 소재 아우터로 몸을 감싸라고 조언하면서 퍼 프리(fur free)를 이야기 하는 건 명백히 모순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다. 이렇듯 상반된 두 가지 현상이 공존하는 패션계에서 디자이너들이 둘 중 하나로 방향을 확실히 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동물의 털과 가죽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패션계뿐 아니라 패션을 소비하는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런던 패션위크의 빅 쇼가 열리는 쇼장 입구에는 어김없이 동물 보호 단체 회원들이 프레스들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다. 동물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를 녹음한 오디오를 틀어놓고, 피투성이 동물 이미지를 흔들며 ‘Shame on You’, 즉 부끄러운 줄 알라는 구호를 외쳐댄다. 그리고 극도로 자극적인 이 소리와 이미지는 양심을 콕콕 찌른다. 이들을 만나면 내 옷차림부터 살피게 되고 퍼나 가죽 아이템을 두르고 있으면 발길을 돌리고 싶어진다. 또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만든 코트라도 보면 갖고 싶은 마음보다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최근 런던 패션위크는 모피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또 로스앤젤레스는 도시에서 모피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업체를 몰아내는 추세다. 이토록 수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자각하고 동물 보호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양심고백이라도 하듯 퍼 프리를 선언한 디자이너와 패션 그룹이 수두룩하다는 말씀. 2018년만 해도 구찌, 버버리, 코치, 장 폴 고티에,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베르사체, 존 갈리아노, 훌라, 도나 카란과 DKNY, 마이클 코어스 그룹 등이 줄지어 모피에서 자유로워지겠다고 공언했다. 구찌의 CEO 마르코 비차리(Marco Bizzarri)는 모피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현대적이지 않은 행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거대 패션 하우스의 퍼 프리 선언은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결국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과 올바른 의식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선택이기 때문에 마치 도미노 효과처럼 수많은 브랜드가 이에 동참하게 되는 것. 퍼 프리의 선두 주자인 스텔라 매카트니의 웹사이트에는 “모피는 부도덕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이다. 그것은 죽음을 이용한 산업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만약 금연 캠페인처럼 모피 코트에 동물 가죽과 털을 잔인하게 벗겨서 만든 옷이라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면 그 앞에서 큰돈을 거리낌 없이 지불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브랜드를 론칭한 2013년엔 품질 좋은 인조 모피를 찾기 어려웠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페이크 퍼가 유행을 주도하고 있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에코 퍼 브랜드 쉬림프의 디자이너 한나 웨일랜드의 말처럼 페이크 퍼가 ‘싸구려’ 취급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리얼 퍼로는 불가능한 생생한 컬러, 동물의 털 못지않게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적당한 가격으로 무장한 진짜보다 더 매력 있는 가짜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그러므로 우리의 몫은 바로 책임감 있는 소비다. 우리가 손에 넣은 고급 퍼 코트가 동물 학대의 대가임을 자각해야 한다. 올바른 소비로 생명을 살릴 수도, 지구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믿음이 힘을 발휘할 시점이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앞다투어 퍼 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모피를 생산하고 또 소비하는 건 더 이상 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