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샤넬 하우스가 그 명성을 이어가는 데는 공방 장인들의 애정과 노고가 큰 몫을 차지한다. 샤넬은 매년 12월 이들의 장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식 쇼 일정과 별개로 탄성이 절로 날 만큼 정교하고 드라마틱한 공방 컬렉션을 선보인다.
가브리엘 샤넬은 파리 장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 힘을 빌려 브랜드를 성장시킨 최초의 디자이너다. 1985년 각종 장식품을 만드는 공방 데뤼(Desrues)를 인수한 이후 40여 곳의 공방을 추가로 넘겨받은 샤넬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이 공방들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공방엔 다양한 배경을 지닌 폭넓은 세대의 직원 6천6백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은 능력을 인정받아 샤넬뿐 아니라 전 세계 유명 패션 하우스와 협력하고 있다.
2021년엔 장인들에게 새로운 공간이 주어진다. 11개 공방이 파리 제19구와 오베르빌레르(Aubervillers)의 경계에 들어설 신축 건물로 이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오롯이 패션 공방에 헌정하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루디 리치오티(Rudy Ricciotti)가 설계한 2만5천 제곱미터 규모의 이 건물은 에너지 효율을 고려하고 까다로운 환경 인증 획득을 목표로 지어졌다.
2020-21 공방 컬렉션 역시 샤넬 공방 장인의 힘과 존재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2020년 12월 4일에 공개한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귀부인들의 성’. “이번 공방 컬렉션을 공개할 장소로 귀부인들의 성으로 알려진 파리의 슈농소성을 선택했어요. 이 고혹적인 고성은 과거 디안 드 푸아티에 공작부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 등이 직접 설계하고 살았던 곳이죠.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상징하는 표식 역시 샤넬처럼 C자 두 개가 교차하는 패턴이었어요.” 버지니 비아르의 말처럼 이 역사적인 슈농소성은 여러모로 샤넬 공방 컬렉션을 선보이기에 적합한 곳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생전에 프랑수아 1세부터 루이 13세 시대까지 살았던 여성들에게 묘한 연민과 존경을 느꼈다고 밝혔다. 장엄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으로 왕실의 가혹한 계율을 따라야 했던 여성들이 모두 위대하다는 내용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 결과 목 위로 높게 올라오는 레이스 칼라부터 고풍스러운 주얼리까지 샤넬 아카이브의 다양한 아이템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시즌 런웨이가 펼쳐진 대회랑 바닥은 흑백의 대형 체커판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위를 프린지가 달린 기하학적 무늬의 트위드 패치워크 롱스커트와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자카드 스웨터, 블랙 벨벳 롱 코트, 트위드 케이프 등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템들이 풍성하게 수놓았다.
공방 장인들의 능력도 최대치로 발휘됐다. 르마리에(Lemarié)는 스터드를 장식한 격자무늬 블랙 레이스 드레스를 만들었고, 르사주(Lesage)는 다마스크 드레스 전체에 섬세하게 수를 놓았다. 여기에 마사로(Massaro)가 작업한 블랙 테이퍼드 부츠와 하이힐, 메종 미셸(Maison Michel)이 야심 차게 디자인한,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모자까지 더해져 매우 낭만적인 컬렉션이 탄생했다.
이번 공방 컬렉션과 함께 세계적인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티저 영상과 사진 역시 화제를 모았다. 슈농소성에서 포착한 아름다운 사진들은 2020-21 공방 컬렉션의 진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샤넬 하우스의 위대한 유산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