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넘어 가상현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접한 놀라운 소식은 메타버스(삼차원 가상 현실 세계) 플랫폼인 로블록스(Roblox) 안에서 치솟은 구찌 백의 가격. 구찌의 디지털 디오니소스 백이 실제보다 비싼 35만 로벅스(로블록스에서 통용되는 가상화폐), 한화로 약 4백 65만원에 판매됐다는 사실이다. 게임은커녕 로블록스 같은 가상 세계와도 거리가 먼, 아날로그가 더 좋은 필자에겐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뜨거운 현상을 일으키는 가상현실 세계가 대관절 무엇이길래 만질 수도 멜 수도 없는 백이 실제보다 비싼 값에 팔렸을까? 정리하자면, 로블록스 내 리셀러들에 의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인 구찌 백이 재판매됐는데, 실제보다 비싼 값에 팔렸다는 것. ‘한정판’이란 수식어는 현실은 물론 가상현실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로블록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와 블로그, 유튜브 채널 등에서 검색을 이어가자 로블록스에서 패션 아이템을 얻는 갖은 방법들이 쏟아졌다. 친절히 소개된 아이템 획득 방법을 따라 수시로 로블록스에 접속하면 이벤트 속 하이 패션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로블록스의 가상공간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고 상대와 소통하는 공간을 넘어 현실 속 나의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로블록스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이를 제대로 알기 전 먼저, 변화의 흐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패션 브랜드들이 가상현실과 게임에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상현실(VR) 기법을 활용해 의상을 가상으로 경험하게 하거나 아바타 모델을 내세워 디지털 스토어를 운영하기도 했다. 게임 속 아바타에 컬렉션 피스를 입혀 등장시키고,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을 론칭하는 등 가상공간 속 게임을 도입하는 패션 브랜드들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구찌는 노스페이스와 협업해 포켓몬고 아바타 전용 아이템을 선보인 데 이어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와 협업을 진행했고, 루이비통은 ‘리그 오브 레전드’ 캡슐 컬렉션을 출시해 게이머들을 열광하게 했다. 패션 브랜드들의 다채로운 의상을 상점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게임 ‘동물의 숲’ 역시 패션계의 판도를 바꾼 사례. 캐릭터 자체에서 영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8비트 아케이드 게임 ‘구찌 비(Gucci Bee)’, ‘구찌 에이스(Gucci Ace)’를 비롯해 루이 비통의 ‘엔드리스 러너(Endless Runner)’ 역시 게임 이상의 쾌감을 선사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 인기는 이번 시즌 발렌시아가의 비디오게임 ‘애프터월드: 디 에이지 오브 투모로우(After World: The Age of Tomorrow)’로 옮겨졌다. 팬데믹 시대의 달라진 패션쇼 방식이 이번엔 비디오게임으로 진화한 것으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2021 가을 컬렉션을 50여 명의 아바타 모델들에게 입히고 2031년 미래 세계를 탐색하며 모험을 시작하는 기록 경신형 비디오게임으로 컬렉션을 소개했다. 히어로 아바타들이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며 암흑 속의 디스토피아가 다시금 균형 있는 현실 세계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놀라운 것은 게임 속 아바타 캐릭터는 물론 게임 세상의 리얼리티. 실제 현실과 오버랩될 만큼 사실적인 게임 속 여정에서 상호작용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만큼 컬렉션 역시 순식간에 각인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경험하게 했다.

 

 

구찌 가든

로블록스에 세워진 ‘구찌 가든’.

게임에 이어 메타버스 같은 현실주의적 가상 세계는 빠르게 진화하며 패션은 물론 예술, 경제 등 수많은 산업 체계에 스며들었다. 미국 10대의 로블록스 이용 시간이 유튜브의 배에 이르고, 네이버 Z가 만든 제페토(Zepeto) 역시 전 세계 사용자가 2억 명을 넘어설 만큼 글로벌 메타버스는 그 영역을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 게임에 친숙하고 가상현실이 자신들의 무대인 MZ 세대를 비롯해 그다음 세대인 알파 세대(2011년에서 2015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새로운 소비의 주역이 된 지금 발렌시아가를 비롯해 구찌, 루이 비통 등 수많은 하이 패션 브랜드가 게임 패션 산업에 열정을 보이는 건 당연한 흐름의 변화다. 게임은 물론 하이패션에 대한 열망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가상 구매로 충족하는 방식 또한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쇼핑 방식일 테니 말이다. 하이패션 브랜드의 백을 한화 약 1만원에, 스니커즈를 약 1만4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니 고민하거나 한계를 정할 필요도 없다. 보다 정교하고 섬세해진 디지털 기술로 가상과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지금, 만약 아직은 낯선 메타버스에 올라탔다면 가상 세계가 제공하는 소소한 경험을 즐기며 쇼핑 리스트에 올려둔 패션 아이템으로 새로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보시라. 우리가 맞이할 가상현실은 생각보다 즐거운 판타지로 가득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