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 스펜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빌리 홀리데이

1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2 s/s 컬렉션. 2 샤넬 2021-22 크루즈 컬렉션. 3,4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이미지. 5,8 영화 <빌리 홀리데이> 스틸 이미지. 6,7 영화 <스펜서> 스틸 이미지.

마린 세르 집 24

9,10,11 마린 세르가 제작한 단편영화 <집 24> 스틸 이미지와 2022 s/s 컬렉션 이미지.

패션 하우스에 테마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런웨이라는 쇼의 형식이 하나의 브랜드를 비로소 하이패션의 땅에 안착하게 하는 도구라면, 런웨이 룩을 비롯해 한 시즌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은 테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떤 철학적인 말을 늘어놓는가, 또 얼마나 예술적인 대상을 은유하는가는 마치 <미슐랭 가이드>의 별처럼 하이패션을 가르는 꼼꼼한 심사 기준이 되고, 쇼 노트에 적힌 글은 대중의 채점을 거쳐 특정 브랜드가 한 시즌 동안 발휘할 파급력으로 치환된다. 파인 다이닝이 맛보다 다른 가치를 중시하듯, 하이패션 역시 멋보다 우선하는 가치를 제안함으로써 ‘하이패션’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유수의 하우스를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매 시즌 영감의 대상을 찾아 분투한다. 영화의 힘은 이때 발휘된다. 예컨대 장 콕토 감독의 <시인의 피(Le Sang d’Un Poete)>를 주제로 삼았다고 밝힌다면, 더 이상 구구절절한 부연 설명 없이도 관객은 그 영화의 미장센과 심오한 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수십억원을 들인 무대장치보다도 효과적으로 쇼에 내러티브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오르페우스의 유언(Testament of Orpheus)>에서 영감 받은 샤넬 2021-22 크루즈 컬렉션은 버지니 비아르가 이끈 여러 컬렉션 중 가장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를 향한 패션 하우스의 애정은 급기야 컬렉션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인 런웨이 대신 필름을 제작하고, 그 안에 옷을 녹여내는 방식이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존 갈리아노는 프랑스 영화감독 올리비에 다앙과 손잡고 젊은 세대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다루는 2022 S/S 시즌 영화-컬렉션을 제작했고, 마린 세르도 해당 시즌이 지나면 휘발되고 마는 런웨이 쇼의 한계를 지적하며 단편영화 <집 24(Ostal 24)>를 공개했다. 두 컬렉션 모두 예술영화 못지않은 영상미를 구현하며 패션계 외부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중이다.

반대로 패션과 영화가 공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1월 12일 국내에 개봉하는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가 대표적이다. 이는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욕망과 탐욕, 살인을 다룬 이야기로 세기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하고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 등 유명 배우가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한편 프라다는 감독 리 다니엘스의 영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속으로 들어갔다. 싱어송라이터 안드라 데이가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정치적 탄압에 굴하지 않고 흑인 인권 제고를 위해 노래한 빌리 홀리데이의 삶과 사랑을 다루며, 치열하지만 빛났던 그의 인생은 프라다가 제작한 아홉 벌의 아이코닉한 룩을 통해 묘사된다. 샤넬 역시 최근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영화 <스펜서(Spencer)>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우리에게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잘 알려진 웨일스 공작부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실제로 입은 샤넬의 드레스가 무려 1천34시간의 수작업을 거쳐 재현되며 화제를 모았다.

패션은 언제나 우리 삶 옆에 있고, 영화는 누군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 패션은 단순히 유행을 좇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영화를 탐닉하고, 영화는 패션을 다루거나 패션을 통해 인물을 더 극적으로 서술하며 매혹적인 상호작용을 이어간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영화와 패션이 삶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이 겨울 하이패션 하우스가 선사하는 영화로운 장면들을 두 눈으로 목도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