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MOROUS SHEER VS CLEAN HOLY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탕(Le Temps)>의 특파원이던 빌타르 드 라게리(Villetard de Laguerie)는 19세기 조선의 풍경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빛과 태양, 하늘을 숭배하던 우리 민족은 자연스레 햇빛의 색인 흰색을 성스럽게 여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숭고와 순결의 상 징으로 자리매김한 화이트 컬러는 S/S 시즌이면 매번 등장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유난히 그 빈도가 잦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 캐럴린 베셋 케네디가 연상되 는 미니멀한 드레스부터 장식적 요소를 섬세하게 가미한 파격적인 시스루 드레스까지. 2024 S/S 시즌 컬렉션은 어느 때보다 더 다채로운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먼저 미니멀리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질샌더를 떠올려보라. 기본 화이트 드레스에 모크넥 튜닉을 더해 근엄하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한편 아크네 스튜디오는 드레이프 디테일로 페미닌한 무드를 극대화해 그리스 여신을 방불케 하는 룩을 선보였으며, 평범한 소재를 비범하게 연출한 웰던은 한마디로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일링으로 에포트리스 시크의 정점을 찍었다.
불투명한 천으로 빈틈없이 몸을 감싼 이들과 반대로 속이 훤하게 비쳐 보디라인이 아찔하게 드러나는 룩 또한 줄을 이었다. 짐머만을 위시해 에르마 노 설비노, 세실리에 반센은 3D 플라워 장식과 풍성한 셔링으로 컬러를 비운 자리를 입체감으로 채운 룩을 런웨이에 올렸다. 장식의 볼륨감이 부담스럽다면 레이스 천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코페르니와 돌체앤가바나는 간결한 기본 원피스 밑단에 하늘하늘한 레이스를 가미해 우아하고 고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더 나아가 프라다와 로에베는 손대면 바스러질 것 같은 연약한 소재 아래 살갗과 보디라인이 은근히 드러나는 관능적인 실루엣을 연출했다. 정제된 간결함이 돋보이는 드레스부터 화려한 디테일을 더한 고혹적인 드레스까지. 순백의 아름다움이 불러온 이 움직임에 동승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저 올 화이트를 선택하는 담대한 애티튜드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