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올해 LVMH 프라이즈의 우승자가 공개됐다. 그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Ellen Hodakova Larsson).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호다코바(Hodakova)’를 이끄는 그는 낡은 가죽 벨트와 신발, 단추, 숟가락 등 벼룩시장에 나올 법한 물건들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재조합한 룩을 선보이며 이른바 ‘골동품’을 근사하게 둔갑시켜 런웨이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가 창조한 새로운 패션은 ‘야드 세일 코어(Yard Sale Core)’, ‘개러지 세일 코어(Garage Sale Core)’, ‘디클러터 코어(Declutter Core)’ 등으로 불리며 하나의 장르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K-패치’를 적용하면 ‘잡동사니 코어’라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호다코바를 필두로 이 괴짜스러운 흐름은 런웨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럭셔리 하우스의 빈티지 제품을 재구성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은 또 다른 LVMH 프라이즈 후보, 듀런 랜팅크(Duran Lantink)의 2025 S/S 쇼에는 중국 식당의 문발을 통째로 뜯어 온 듯한 원피스가 등장했다. 호다코바 역시 지퍼, 단추 등 동대문종합시장의 의류 부자재 코너에서 볼 법한 자재를 활용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컬렉션을 이어갔다. 이러한 행보를 펼친 것은 기세 좋은 신인 디자이너만이 아니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2024 F/W 시즌, 이베이에서 직접 선별한 1천여 개의 골동품을 초대장으로 보내며,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라는 문구를 적어 동봉했다. 그리고 제품 구매 시 증정하는 더스트 백을 재구성한 톱, 수백 개의 브래지어를 이어 붙인 피날레 드레스를 런웨이에 세우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암시했다. 한편 ‘수공예의 왕’이라 불리는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은 실제 커튼을 만드는 빈티지 플라워 원단으로 풍성한 드레스를 완성했다(그는 이전에도 키보드로 만든 톱, 파티 장식에 쓰이는 리본 스커트 등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잡동사니 코어를 가장 먼저 눈여겨본 것은 소위 ‘패셔니스타’라 불리는 셀러브리티들이다. 지난 8월, 영화 <보더랜드> 시사회에서 1백2개의 숟가락을 엮은 호다코바의 슬리브리스 톱을 입고 등장해 화제를 모은 케이트 블란쳇은 2024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도 그의 숟가락 장식 재킷을 선택해 자신의 패션 미학을 대중에게 각인했다. 카일리 제너, 에마 코린, 그레타 리 또한 공식 석상에 호다코 바의 옷을 입고 등장해 그의 팬임을 인증했다. 이 외에도 안전핀으로만 제작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금색 드레스 차림으로 그래미 시상식에 나타난 마일리 사이러스, 잔 다르크가 연상되는 튀르키예 디자이너 딜라라 핀디코글루 (Dilara Findikoglu)의 나이프 드레스를 입고 <바비> 시사회장에서 시선을 모은 하리 네프,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신인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잡동사니 코어 룩을 홍보하는 줄리아 폭스 등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엉뚱한 매력의 패션을 지지하는 중이다. ‘코어’라는 필승(?) 수식어가 붙었음에도 다소 난해한 비주얼의 이 패션이 리얼 웨이에서 활용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트렌드가 유의미한 이유는 지금 패션계가 가장 주목하는 ‘지속 가능성’의 새로운 방향 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잡동사니 코어는 좀 더 유쾌하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에게는 ‘골동품’, 나아가 쓰레기로 여겨지는 물건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활용해 하이패션으로 승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누군가 이 패션이 존재하는 의미를 묻는다면, 호다 코바의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패션계에는 더 이상 다른 ‘디자이너’가 필요하지 않아요. 충분히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계를 넓히는 더 많은 ‘혁신가’입니다.” 우리가 지난 패션 역사에서 수없이 목도한 혁명의 순간이 지금, 또 한번 찾아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