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TTHIEU BLAZY with CHANEL
졸업 컬렉션의 심사위원이던 라프 시몬스에게 그 자리에서 고용될 만 큼 반짝이는 재능을 가졌던 마티유 블라지. 그는 메종 마르지엘라와 피 비 필로 시절의 셀린느, 캘빈 클라인을 거쳐 보테가 베네타의 혁신을 이 끌며 스타 디자이너로 발돋움했고, 마침내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 낙점되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샤넬의 새로운 수장은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추측이 난무한 것과 달리 하우스가 진지하게 검토한 후보는 단 3명이었다고 한다. 샤넬은 마티유 블라지를 인터뷰한 후 더 이 상의 고민 없이 확정했다는 후문. 샤넬이 마티유 블라지를 선택한 것도 그가 보테가 베네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티유 블라지는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정공법을 사용한 보기 드문 디자이너다. 그는 시끄러운 패션 월드에 흔들리지 않 았고, ‘바꾸기 위해 바꾸는’ 겉핥기식 이벤트를 벌이지 않았다. 보테가 베 네타의 아이덴티티와 기존 고객에 대한 놀라운 이해도를 바탕으로 묵직 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고, 마침내 콰이어트 럭셔리로 대중 을 설득했다. 그는 자신의 방식이 통했음에도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레 더에 데님 텍스처를 트롱프뢰유 한 팬츠나 유연한 레더로 만든 셔츠로 하우스 특유의 럭셔리를 일상에 스며들게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샤넬은 그 어떤 브랜드보다도 하우스의 유산과 상징성을 공고히 지켜가 는 브랜드다. 그러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세대와 의 연결 고리를 끊임없이 모색할 이를, 다음 세대에도 그 비전과 가치를 공고히 전달할 수 있는 이를 원했을 것이다. 전통을 존중하는 마음을 바 탕으로 현대에 녹여낼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마티유 블라지의 장인 같은 면모는 샤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제 매년 10개의 컬렉션을 치열하게 치러야 하는 샤넬의 수장이 된 마티유 블라 지의 샤넬은 어떤 모습일까? 샤넬의 찬란한 유산 중 어떤 시절에 주목할 까? 그의 시선에서 샤넬은 어떤 브랜드일까? 그리고 그의 섬세한 손길이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닿을까? 어쩌면 그가 샤넬의 레퍼런스에 오래도 록 기록될 새로운 아이콘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마티유 블라지 의 샤넬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LOUISE TROTTER with BOTTEGA VENETA
패션을 관심 있게 봐온 이들이라면 루이스 트로터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더라도 그의 컬렉션을 보면 알아볼 것이다. 단조롭던 조셉을 뉴욕 패션위크의 놓쳐서는 안 될 컬렉션으로 급부상시키고, 스포츠 브랜드로만 여겨지던 라코스테를 재해석해 패셔너블한 기운을 불어넣은 디자이너이니 말이다. 까르뱅에서는 1년이라는 너무나 짧은 기간 머물렀기에 자신만의 장기를 어필하긴 부족했지만, 보테가 베네타로 향하는 황금 티켓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터. 쿠튀르적인 디테일, 감각적 컬러 사용, 편안하지만 남다른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데 능수능란한 그를 보테가 베네타가 눈여겨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라코스테에서 스포츠웨어를 패셔너블한 방향으로 풀어내는 어려운 숙제를 성공적으로 해낸 만큼 라이프스타일 분야로 브랜드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비전과 역할을 부여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MICHAEL RIDER with CELINE
셀린느의 새로운 디자이너가 마이클 라이더로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에디 슬리먼이라는 스타 디자이너가 떠난 자리인 만큼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올드 셀린느 시절, 피비 필로의 진두지휘 아래 컬렉션을 이끈 디자이너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8년부터 2024년 5월까지 폴로 랄프 로렌의 여성 부문을 지휘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경험도 충분히 쌓은 상태다. 현재의 셀린느는 올드 셀린느 시절의 아이덴티티를 잇고, 그 시절의 영광을 되찾길 바라는 것일까? 아직 많은 부분 베일에 싸인 마이클 라이더가 고향으로 돌아온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하길 고대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GLENN MARTENS with MAISON MARGIELA
존 갈리아노와 작별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된 디자이너는 바로 글렌 마틴스! 그는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디자인으로 파산 직전의 와이프로젝트를 일으켰고, 그의 디자인적 장기는 디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후에도 다시금 완벽히 빛을 발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디젤을 완벽히 리브랜딩하며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된 것. 그는 앤드워프 왕립학교를 졸업하고 장 폴 고티에에서 주니어 디자이너로 일하며 기본기와 전통적 디자인에 파격적 디테일을 능수능란하게 더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차근차근 다져온 디자이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메종 마르지엘라에 닿았고, 유독 골수팬이 많은 마르지엘라 러버들은 그의 입성을 열렬히 반기는 중. 현시점에서 가장 핫한 패션계의 마다스의 손, 글렌 마틴스의 손길을 거친 마르지엘라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동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디젤과는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디젤과 메종 마르지엘라가 속한 OTB의 의미인 ‘용감한 자들만(Only The Brave)’처럼 더욱 담대한 글렌 마틴스 식 마르지엘라를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SARAH BURTON with GIVENCHY
인턴으로 시작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26년간 맥퀸에서 하나의 우주를 창조해낸 사라 버튼이 지방시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사라 버튼은 패션계의 악동이던 창립자 알렉산더 맥퀸의 폭발적이고 반항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컬렉션을 이어받아 하우스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집 같았던 맥퀸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지방시에 새로운 둥지를 튼 사라 버튼. 재미있는 사실은 지방시는 한때 사라 버튼의 사수였던 알렉산더 맥퀸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삼았었다는 것. 하지만 맥퀸은 지방시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맥퀸뿐만 아니라 존 갈리아노, 줄리앙 맥도날드, 클레어 웨이트 켈러도 마찬가지였다. 매튜 윌리엄스는 지방시의 아이덴티티와 자신의 연결 고리를 유연하게 찾아 지방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지방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리카르도 티시가 간결한 담대함으로 하우스를 일으킨 것처럼 과거의 영광을 다시금 꿈꾸고 있을 터. 지방시의 미래는 위베르 드 지방시가 꿈꾼 간결함, 동시대성, 유스풀 엘레강스를 유연하게 재해석하는 데 달려 있지 않을까.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 걸리더라도 사라 버튼이 자신이 갈고 닦아온 지구력으로 지방시라는 하우스를 재건하고 그의 색깔을 온전히 관철해내길 기대한다.

HAIDER ACKERMANN with TOM FORD
고 칼 라거펠트가 샤넬을 이어받아도 마땅한 후계자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했을 만큼 공인된 패션계의 실력자 하이더 아커만. 그는 과거에 디올과 마틴 마르지엘라 등의 하우스 브랜드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나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인 하이더 아커만만을 올곧게 운영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브랜드가 사업을 접게 되었고, 벨루티에 잠시 머물렀다가 캐나다 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던 하이더 아커만이 향한 새로운 행선지는 바로 톰 포드. 톰 포드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열렬한 팬인 피터 호킹스가 톰 포드의 아이콘을 고증하는 데만 집중해 아쉬움을 낳은 것과 달리 하이더 아커만은 새로운 톰 포드를 구현할 수 있을까? 절제와 관능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가장 빛났던 시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그를 두고 “(패션의)미래에 보기 드문 희망” 같은 디자이너라고 한 수지 멘키스의 말처럼 본격적으로 목도할 그의 저력이 궁금해진다.

DAVID KOMA with BLUMARINE
2000년대 무드의 관능적 로맨티시즘으로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블루마린. 브랜드의 성장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발테르 키아포니가 한 시즌 만에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며 새로운 디자이너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새로 선발된 디자이너는 세련된 컷 아웃과 맥시멀한 디테일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감각적 관능미를 구현할 줄 아는 데이비드 코마. 최근의 블루마린은 나비나 하트, 꽃 모티프를 활용해 잘파 세대의 마음을 끌었지만 데이비드 코마의 블루마린은 드레이핑이나 구조적 실루엣, 직관적 디지털 프린트, 그리고 신선한 소재라는 그의 스타일이 반영되어 좀 더 강렬하고 성숙해지지 않을까 점쳐본다.

JULIAN KLAUSNER with DRIES VAN NOTEN
창립자 드리스 반 노튼이 사임하며 하우스에 큰 전환점을 맞았으나 슈퍼스타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선발하지 않은 드리스 반 노튼.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로 한 듯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과 6년간 함께하며 오른팔로 활약한 젊은 디자이너인 줄리안 클라우스너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택한 것. 노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그는 톰 브라운과 겐조,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메종 마르지엘라의 주니어 디자이너로 근무한 인재. 이후 드리스 반 노튼에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한 그는 단 6년 만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꿰차며 실력을 입증했다. 줄리안 클라우스너가 하우스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계승
할지 하우스의 새로운 2막이 펼쳐질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