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CE & GABBANA

1990년대 그룹 아쿠아의 히트곡 ‘바비걸’이 돌체 앤 가바나의 마음을 지배했다. 바비 인형이 자신이 원하는 가상현실을 꿈꾸는 내용의 가사는 지금 젊은 세대의 문화에 완벽하게 들어맞으니 말이다. 디자이너 듀오는 사이버 세상을 거침없이 시각화했다. 쇼가 시작되자 구식 텔레비전의 화면 조정이 떠오르는 무지갯빛을 디지털 패턴으로 재해석한 현란한 룩이 쏟아져 나왔으니! 1990년대 슈퍼모델이 떠오르는 섹슈얼한 블랙 드레스와 보디수트가 그 뒤를 이었고, 블랙 & 화이트 패턴과 네온 컬러로 포인트를 준 룩으로 정신을 쏙 빼놓은 후 블링블링한 메탈릭 컬러 일색의 퓨처리스틱한 스타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런 극도의 화려함은 1990년대를 풍미한 섹슈얼한 스타일을 탐내는 요즘 세대를 위한 제안이라는 게 디자이너 듀오의 설명이다. 분명한 건 힘을 뺀 룩은 단 하나도 없었고, 최선을 다해 디테일을 추가하고 또 추가했다는 거다. 그래서 모든 룩이 분명히 돌체 앤 가바나다웠고 그들의 마니아를 사로잡았을지는 모르지만,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지금 당장 이 옷을 입고 길거리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었다.

DOLCE & GABBANA

결론부터 밝히자면, 맥시멀리즘의 대가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 듀오의 진가가 빛을 발한 컬렉션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꽃과 레오퍼드, 도트, 스트라이프 등 현존하는 패턴을 모조리 모아 짜깁기한 듯한 리조트 룩이 수도 없이 쏟아졌으니 말이다(‘시칠리아를 상징하는 프린트의 패치워크’란 테마에 이보다 더 충실할 순 없을 듯하다). 이번 컬렉션은 프린트뿐 아니라 꽤 다양한 실루엣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스페인, 아라비아, 노르만, 프랑스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하우스의 장인정신을 최대로 발휘해 시폰, 조젯, 데님 등 폭넓은 소재를 한데 조합한 기술력 또한 인상적이었다. 다만, 돌체 앤 가바나가 1993년 선보인 컬렉션에서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쇼에 등장한 아흔여덟 벌이 전부 비슷해 보일 만큼 신선한 요소가 부재한 것이 문제였다. 이탈리아에 바치는 돌체 앤 가바나 듀오의 일편단심 러브 레터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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