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샌더

1943년 11월 27일 출생의 베셀부렌, 절재주의 독일 패션 디자이너이자, 질샌더 패션 하우스 재단의 설립자이다.

질샌더의 일생

샌더는 그레펠트 텍스타일(1963년) 에서 로스엔젤리스 켈리포니아 대학교(Ucla)에서 외국인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1964-64) 후에 UCLA 를 관두고 뉴욕으로 옮기면서 패션 작가가 되었다. 스무한살때 52세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함브루크로 돌아와 그녀의 형제들과 함께하게 된다. 독일 로테어바움 함부르그에 어머니의 재봉틀로 패션하우스 질샌더를 만든다. 첫 번째 품평회는 트레비라 직물을 사용한 호이체스트를 1973년에 상표권 아래에 두고 발표한다. 1975년 파리 아테네 프라자 쇼 품평회에서 주목받지 못한것을 극복하고  회사를 1980년대말에 프랑크프로보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이어지는 회사의 성장으로 곧 세계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는데, 린다 드레스너는 한 동안 샌더 상점을 뉴욕공원가에, 존 버스테인은 런던 브라운에 차리게 된다.
1995년 Jil Sander 그룹은 1 억 1400 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1999년 프라다 그룹은 샌더회사의 지분 75%를 매입했고, 샌더는 새로운 분야에 의장이 되고 창의적 디자이너로 남는다. 2000년 1월 샌더는 기대치 않은 프라다 CEO 패트리지오 베르텔리와 대립으로 짧은기간 의장직을 사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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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L SANDER

디지털 런웨이로 새 컬렉션을 공개한 질샌더. 런웨이와 조명, 모델만이 존재하는 영상마저 미니멀했다. 단순한 아름다움의 힘은 아주 강력하다. 루크와 루시 마이어 부부는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고, 또 적절하게 활용해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차분히 잘 이끌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디자이너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데이웨어에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평상복이라고 해서 집에서 입는 옷을 의미하는 하는 건 아니다. 한층 부드러운 실루엣을 이루는 테일러링으로 편안함을 추구했고, 오간자처럼 시어한 소재를 사용해 사적인 시간에 접근했으며 손으로 뜬 크로셰와 비정형 매듭, 마치 보따리 같은 모양의 백으로 포근한 손길을 더했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한 유선형의 레드와 네이비 패널을 장식한 아이보리 드레스는 마치 현대미술 작가의 상징적인 조각품처럼 견고하고 아름다웠다. 질샌더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이토록 경건하고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