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장 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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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UZARRA

몇 시즌째 파리에서 안정적으로 컬렉션을 펼치고 있는 조셉 알투자라. 곧 딸아이의 아빠가 될 예정인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 빠져들어 어머니와 할머니가 직접 가르치고 짜주던 니트 풀오버를 떠올렸다. 그 때문일까? 컬렉션을 구성한 대부분의 옷에는 손맛이 느껴지는 니트 아이템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 덕분에 다정하고 따듯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고조됐다. 거기에 햇살을 닮은 빨강과 노랑, 솜사탕 같은 하늘색과 핑크색, 살구색 등 부드러운 컬러로 채색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피어올랐다. 뉴요커답게 단정한 테일러드 룩을 추가하는 것도 있지 않았는데, 1970 년대 풍의 늘씬한 수트를 메인으로 알투자라의 DNA를 적절하게 담아냈다. 수트의 경우 가장 클래식한 버전부터 재킷과 버뮤다팬츠를 짝짓거나 상하의 컬러를 다르게 스타일링하고, 크로셰 베스트를 매치해 앞서 언급한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과연 딸이 태어나면 또 어떤 컬렉션을 만들어낼지, 알투자라에 사랑스러움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ZADIG & VOLTAIRE

블랙 팬츠 수트에 리본 매듭 브라톱을 쿨하게 매치한 오프닝 룩을 보자마자 구매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파리지엔 시크 룩의 정석을 보여주는 케이트 모스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세실리아 본스트롬의 의도는 적중했다. “연령대에 구애받지 않고 TPO에 관계없이 잘 어울리는 룩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그 결과 낙낙한 핏의 호피 무늬 톱에 타이트한 가죽 팬츠를 매치하거나 원색 라이더 재킷에 배기 핏 카고 진 팬츠 조합하는 등 따라 하고 싶은 스타일이 가득했다. 참신한 요소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쟈딕 앤 볼테르의 DNA 가 고스란히 담긴 컬렉션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PACO RABANNE

파코라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앙 도세나는 백스테이지에서 자신을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 결과 1960~70년대 무드를 기반으로 광활한 우주와 유토피아, 그리고 로맨틱한 하트와 꽃 등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오브제들이 컬렉션 곳곳에 등장했다. 파코라반의 시그니처인 팝아트 프린트는 이번 시즌에도 존재감을 한껏 발휘했는데, 그래픽적으로 변주한 데이지꽃 무늬 부츠며 도트 패턴 드레스, 무지갯빛으로 채색한 스트라이프 프린트 터틀넥 톱이 대표적이다. 프린지를 길게 늘어뜨린 백, 행성을 연상시키는 펜던트 목걸이나 커다란 메탈 나비 버클 벨트 등 위트 있는 액세서리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영혼의 단짝, 피터 섀빌(Peter Saville) 과 협업해 탄생시킨 ‘Male Tale’ 프린트 티셔츠까지! 모델 최소라가 입은 우주 프린트 라이더 재킷과 히피풍 장미꽃 무늬 드레스의 오묘한 하모니가 이토록 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줄리앙 도세나의 힘일 터다.

YOHJI YAMAMOTO

요지 야마모토는 모든 컬렉션에 예술적 요소를 불어넣어 시적인 쇼를 선보이는 데 능하다. 이 영민한 디자이너 역시 2020 S/S 시즌 패션계에서 가장 큰 화두로 부각한 지구온난화와 환경보호 운동에 집중했고, 이를 극적으로 구현해내는 데 몰입했다. 그 결과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모자를 쓴 모델들은 날카로운 컷아웃과 예상을 벗어난 비대칭 실루엣이 특징인 블랙 드레스 시리즈에 스니커즈 혹은 메리제인 슈즈를 신고 등장했다. 결론은? 20 세기 여성들이 입었을 법한 쿠튀르 드레스와 지극히 미래적인 분위기의 점프수트를 한데 조화롭게 공존시킨 요지 야마모토의 내공이 감동을 자아냈다는 것.

ISSEY MIYAKE

컬렉션을 감상하는 내내 모두가 이렇게 미소 지은 쇼가 또 있었을까? 이세이 미야케를 처음으로 지휘한 사토시 곤도는 “인체와 옷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옷을 입고 움직이는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라며 쇼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성공적이었다. 영민한 디자이너의 바람대로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옷은 모델들의 점프, 회전, 춤을 보며 격렬하게 나부꼈고, 이 광경을 보며 기쁨이 고스란히 전염됐으니 말이다. 조금 더 현장감 있는 설명을 보태자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옷을 입고 연신 점프를 해 리듬감을 전했고, 스케이트보드를 타 옷을 낙하산처럼 부풀리거나 여러 모델이 손을 잡고 과감한 동작을 펼쳐 옷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촘촘한 플리츠와 얇은 소재, 밝은 컬러, 대담한 그래픽 프린트를 돋보이게 하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어 보였다. 사토시 곤도의 계획은 완벽하게 통했고, 이세이 미야케의 새로운 시대가 밝게 열리는 순간을 쇼를 감상하던 모두가 목격했다.

MARINE SERR

변덕스러운 파리의 날씨를 예감하고, 검은 우산을 초대장으로 보낸 그녀의 새 시즌 테마는 ‘Mar´ee Noire’. 영어로 블랙 타이드, 즉 기름 유출을 뜻하는 이 타이틀 아래, 야속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쇼에 등장한 이들을 디자이너는 ‘기후 전쟁 끝에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힙스터들의 마음을 움직일 미래적인 감성을 주입한 스포티즘은 여전했는데, 이토록 세기말적인 옷 외에 우리가 더욱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컬렉션의 절반가량을 바다에서 건진 플라스틱 병 등 업사이클링 소재로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테리 소재 드레스와 스커트 수트에 대해서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항상 타월을 가지고 다니거나 스스로 스펀지가 되어야 할 수도 있어요” 라며 위트 있게 경고했다. 한편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 살‘ 아남은 사람’은 시니어 모델, 임신부, 개 등 다름을 존중한 캐스팅을 통해 리얼리티를 배가했다. 이제 누구든 마린 세레처럼 환경과 다양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를 내놓아야 할 때다. 어떤 디자이너가 패션계에서 살‘ 아남은 사람’ 이 될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테니까.

LANVIN

파리 케 브랑리 미술관(Mus´ee du Quai Branly) 정원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랑방. 비가 오는 바람에 관객 모두 우산을 펼치고 쇼를 지켜보는 장관이 연출됐다. 브루노 시아렐리는 이번 시즌 1905년 애니메이션 <리틀 네모(Little Nemo: Adventures in Slumberland)> 속 캐릭터를 유쾌하게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소매를 과장되게 연장한 셔츠와 스트라이프 티셔츠, 비대칭 스커트, 마이크로 플리츠 라메 카프탄, 카고 팬츠, 토글 코트, 다채롭게 변주한 아노락 등 구매욕을 자극할 만한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다. 쇼의 오프닝을 연 화이트 케이프, 코쿤 재킷 등 건축적인 실루엣도 매력적이었다. 혹자는 한 컬렉션에 너무 많은 요소를 녹여내 본질을 흐렸다고 말하지만 뭐 어떤가. 브루노 시아렐리가 야심 차게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하나같이 탐날 만큼 아름다웠다.

LACOSTE

루이스 트로터는 두 번째 라코스테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프랑스 테니스의 상징적인 장소인 롤랭가로의 마티유 시모네 코트에서 컬렉션을 소개한 것부터 그랬다. 테니스 자체가 주는 클래식한 매력에 감각적인 모더니스트 루이스 트로터에 대한 기대치가 더해져 쇼 시작 전부터 조금 설렜다. 먼저 니트 풀오버, 롱 드레스, 볼드한 그래픽 패턴으로 변주한 피케 셔츠, 스트링으로 볼륨을 강조한 아노락 드레스와 점퍼, 긴 길이로 우아함을 더한 플리츠스커트 등 클래식한 아이템의 재탄생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컬러 매치가 신선했다. 명도가 조금 다른 민트와 카키를 하나의 룩에 사용하거나, 낙타색과 살구색 혹은 레몬색과 버건디 컬러를 짝짓는 방식은 오직 루이스 트로터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조합이었다. 컬렉션의 완성도를 더한 스니커즈와 주얼리는 각각 헬렌 키컴, 알리기에리와 협업해 디자인한 것. 또 하나, 쇼가 끝난 직후 억수같이 쏟진 비 덕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프레스의 머릿속에 행운의 쇼로 기억될 것이다.

ROCHAS

로맨티시즘을 감각적으로 구현해내는 로샤스. 이번 시즌에는 매력적인 색채 조합으로 극강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냈다. “그간 로샤스 컬렉션엔 어둡고 극적인 요소가 많았어요. 그러나 새봄엔 팝적인 원색과 반짝이는 일렉트릭 컬러가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배가시키고 싶었죠.” 알레산드로 델라쿠아의 의도는 적중했다. 암청색, 연노랑, 초록, 주황 등 달콤한 컬러 팔레트와 메탈 컬러를 기반으로 선보인 로샤스의 룩은 셔링 디테일과 벌룬 실루엣, 오간자 소재 등 지극히 여성스러운 요소를 만나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드러냈다. 결론은? 로샤스의 마법은 이번 시즌에도 통할 것이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