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ette

최근 한국의 친구들과 연락하면 모두들 털어놓는 고민이 있다. 그동안 쓰던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생리컵은 확실히 신개념이다. 종 모양의 실리콘이 내가 몸 밖으로 꺼낼 때까지 질 안에서 생리혈을 고이 받아두고 있는다니 생각해본 적 없는 물건이다. 일단 질 속에 안착하면 질 근육이 생리컵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자궁에서 나온 생리혈이 컵에 담겨 밖으로 새지 않는다. 자궁경부의 구조상 물구나무를 선다 해도 컵에 있던 생리혈이 자궁으로 역류하는 일도 없다. 이처럼 혁신적이지만 몸에 넣을 몇 만원 짜리 물건을 보지도 않고 산다는 건 역시 부담일 수 있다. 그 런데 그 생리컵이 집 앞 약국 진열대에 번듯이 자리하고 있 다면?

호기심에 동네 드러그스토어로 시장조사를 나갔다. 메루나(Me Luna)가 먼저 눈에 띄었다. 독일 제품으로 사이즈가 다양했다. 조잡한 패키지가 아쉽지만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꽤 있다. 심플한 패키지의 셀레나컵(Selenacup)도 보인다. 올해 출시된 따끈한 오스트리아산 신상이다. 내친 김에 독일 아마존 사이트도 뒤져보았다. 직구 인기 아이템인 국제품 문컵(Mooncup), 핀란드 제품 루네테(Lunette)와 독일 섹스 토이 회사에서 개발했다는 고급스러운 패키지의 모스키토(Moskito)에 눈이 간다. 일회용 윤활제와 무인양품에서나 팔 것 같은 세척 솔까지 준다. 이 중 셀레나컵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송 대행지를 지정해 한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안정성이 입증된 의료용이나 PET 실리콘으로 만들어졌으며, 가격은 대부분 15~20유로다. 문제는 사이즈다. 여러 리뷰를 정독한 결과 브랜드 기준은 큰 의미가 없고 본인이 잰 질 길이와 생리 양만으로 자기에게 맞는 사이즈를 결정 지으면 되는 모양이었다.

생리 첫날 아침, 아랫배가 뭉근한 느낌에 그분이 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5분 정도 끓는 물에 생리컵을 삶고 두어 시간 식혔다(인터넷에서 덜 식은 생리컵을 모르고 급히 넣었다가 질이 불을 뿜었다는 도시 괴담 같은 글을 읽은 후다). 일단 가장 말랑한 질감의 모스키토를 집어 들었다. 제일 넣기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리콘이 말랑하면 접어 넣기는 편하지만 상대적으로 탄성이 덜해 질 안에서 원래 모양으로 펴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S자 모양으로 컵을 날씬하게 접어 밀어 넣으니 쑤욱 들어가기는 했는데, 남들이 말하는 ‘뿅’ 하고 깔때기가 펴지는 느낌이 없 고, 안에서 귀퉁이가 접힌 상태로 있는지 거슬리는 느낌이 있었다. 결국 몇 분 뒤 꼬리를 더듬어 빼낼 수밖에 없었다. 후에 찾아본 결과 소프트한 생리컵은 더 복잡한 방법으로 접어 반동으로 펴지도록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말하자면 상급자용에 가까운 셈이다.

그리하여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실리콘이 조금 더 단단한 루네테다. 귀퉁이를 가운데로 꾹 누르는 펀치 다운 방식으로 접어 질에 밀어 넣은 뒤 잘 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지를 살짝 넣어 컵 둘레를 더듬어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단순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탐폰은 일직선으로 밀어 넣고 꺼낼 땐 밖으로 나온 실을 당기기만 하면된다. 생리컵은 그렇지 않다. 넣을 때도 뺄 때도 손가락이 질 안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생리컵을 넣고 빼다 보면 질과 손가락이 서로의 감촉을 느끼는 와중에 실리콘의 감촉도 전해지면서 이런저런 감각이 ‘혼돈의 카오스’를 연출한다. 또 질 근육은 예상보다 단단해 생리컵을 넣은 상태에서는 질 벽과 컵 사이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생리컵을 빼낼 때 질과 컵 사이의 진공상태를 풀기 위해 컵을 ‘지그시’ 누르며 비틀면 빼내기 쉽다는 사람들의 조언은 처음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느껴졌다. 쪼그린 두 다리는 저려오고 긴장되니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양이 좀 많았던 둘째 날 문컵을 사용했을 때가 그랬다. 문컵은 다른 생리컵보다 둘레가 더 도톰하고 실리콘도 제법 탄탄한 편이다. 넣을 때는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7자 접기로 한 번에 성공했는데, 빼는 데 20분은 족히 걸렸다. 도톰한 두께 때문인지 컵을 눌러 진공상태를 푼 후 힘을 어지간히 주어 당겨도 저항이 심했다. 초급자에게는 메루나처럼 적당한 두께에 꼬리가 고리나 볼 모 양으로 된 것이 잡기 더 수월할 듯하다.

그렇다고 생리컵이 궁금한 사람에게 겁을 주거나 쓸 만한 물건이 못 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처음엔 난관을 겪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생리컵이 주는 편의성은 위에서 겪은 모든 시행착오를 상쇄하고도 남으니 한두번은 더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착용하면 이물감이 전혀 없다. 자신이 생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경험자들의 얘기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생리혈도 둘째 날 문컵과 씨름했을 때 빼고는 생리컵을 제거할 때 손가락 끝에 조금 묻는 정도고, 셋째 날 8시간 만에 교체할 때도 상상처럼 컵에 찰랑찰랑하게 가득 차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이건 사람마다 다르니 양에 따라 교체 시간을 조정하면 된다). 양이 줄어드는 넷째 날은 불금이었다. 외출 전 메루나 스몰 사이즈를 착용한 뒤 펍에서 새벽까지 놀았다. 집에 기어 들어와 샤워를 하며 생리컵을 비우고, 물로 씻은 뒤 다시 넣고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화장실에 가면서 컵을 비웠다. 컵을 넣고 빼는 건 점점 쉬워진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기도 했던 ‘질 탐험’도 생리 마지막 날쯤 되니 점차 익숙해졌다. 어찌 보면 이게 생리컵이 주는 해방감과 환경보호만큼이나 중요한 장점 같다. 나름대로 내 몸을 만지기 부끄러워한 적도 없고, 나 자신을 구석구석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생리컵을 사용하면서 자궁의 구조, 생리의 과정을 탐구하게 되고, 여러모로 새삼 몰랐던 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더니, 생리컵을 쓰면서 엉뚱하게 학습의 즐거움을 느꼈다.

TIP
생리컵을 처음 쓴다면

– 질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 이하로 짧지 않다면 중간 길이(45~50mm)의 제품부터 시작하면 좋다. 착용 후 아랫배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질에 비해 컵이 너무 길거나, 자신의 방광 혹은 다른 내장 기관이 예민한 것일 수 있으므로 더 작은 컵을 쓰면 된다.
– 생리 초기 이틀만 써보거나 집에만 있는 주말에만 쓰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시도해도 좋다. 공중화장실에서 교체하는 건 난도가 높으니 넣고 빼는 데 요령이 생겼을 때 도전해볼 것. 한 번에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 질 안에서 생리컵은 탐폰보다는 덜 깊숙한 곳에 자리해야 하지만, 꼬리까지 완전히 들어가야 새지 않는다. 만약 꼬리가 길다면 소독한 가위 등으로 꼬리를 잘라서 쓴다.
– 생리컵은 대부분 상단에 아주 작은 공기구멍이 나 있다. 빼려고 생리컵을 누를 때 이 구멍이 있는 면을 누르면 진공상태가 더 쉽게 풀린다. 컵을 넣을 때 공기구멍의 위치를 기억해두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