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해안에 자리한 그라스는 전 세계 향수의 원료가 되는 꽃의 70%가량을 생산하는 꽃의 섬이다. 흥미로운 향기들이 사시사철 코끝을 건드리고, 자동차로 섬을 가로지르면 광활한 라벤더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언덕마다 미모사가 피어있고, 집집마다 장미와 재스민이 정원에 가득하다. 향기로운 섬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향사가 된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디올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이자 이번 미스 디올의 리뉴얼 작업을 총괄한 디올 퍼퓨머-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쉬다. 오랜 세월 완벽하다고 칭송받아온 걸작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조향사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까? 밤사이 내린 비로 뿌연 안개가 가득했던 제주도에서, 어려운 숙제를 완벽하게 해낸 프랑소와 드마쉬와 미스 디올에 관해 주고받은 이야기.
사랑의 향기가 나는 향수를 만들어주세요. by 크리스찬 디올
미스 디올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한 장소로 제주를 택했다. 나는 섬사람이다. 섬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과 제주 해녀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여기를 선택했다. 유년기를 포함한 삶의 대부분을 섬에서 보냈다. 지금도 일 드 라 자트라는 작은 섬에 살고 있다. 제주 역시 매력적인 섬이다. 제주에 오면 마음이 온화해진다. 사방이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느낌도 좋아한다. 그리고 섬사람들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유대감 같은 것이 있다.
새로운 미스 디올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이번 미스 디올은 오 드 퍼퓸 형태로 출시된다. 1947년 처음 출시한 미스 디올 오리지널의 정수를 유지한 채 새롭게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디올의 새로운 디렉터로 온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해석하는 디올 정신과 훨씬 잘 맞지 않나 생각한다. 더 순수하고 본질적인 동시에 관능적이다.
기존의 미스 디올을 새로운 미스 디올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에 어떤 포부 같은 것이 있었나? 마리아의 첫 번째 디올 컬렉션을 보고 그녀가 표현한 새로운 미스 디올과 기존 미스 디올 향수 사이의 차이를 느꼈다. 그리고 그 간격을 좁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스커트 실루엣은 밑단으로 갈수록 풍성하게 퍼지는데 기존 컬렉션에 비해 가벼워 보이지는 않으면서 입기 편안하고 덜 정형화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모던하고 페미닌한 특징을 향수에도 녹여내고 싶었고 이런 바람을 담아 작업했다.
조향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무엇이었으며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는 지 궁금하다.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향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 안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점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완전히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고 할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기존 미스 디올의 플로럴 향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로즈에 집중했다. 마리아가 선보인 컬렉션이 굉장히 페미닌한 스타일인데 이를 향으로 표현하는 데 장미가 제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도한 조향 방식이나 원료가 있나? 완전히 새로운 조향 방식이나 처음 사용한 원료는 없다. 모두 미스 디올 오리지널을 비롯해 디올 향수에 쓰이던 원료이다. 그 대신 비율에 변화를 줬다. 핑크 페퍼콘과 로즈우드 역시 처음으로 선보이는 원료는 아니지만 뉴 미스 디올에서 그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난다. 핑크 페퍼콘은 후춧과의 식물은 아닌데 약간 스파이시한 향 때문에 페퍼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즈우드는 약한 장밋빛을 띠고, 강하지 않은 우드 향을 산뜻하게 풍긴다.
미스 디올의 본질을 유지한 채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방법이 있었나?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보다 기존의 향에 관능을 더한 작업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물론 기존의 틀 안에서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제한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어쩌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보다 더 까다로울 수도 있는 작업이다. 조향을 하는 과정은 마치 아크로바틱 같았다. 기존의 틀 안에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을 강제로 욱여넣는다는 느낌까지 받았으니까. 여러 향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향수는 하나의 완전체다. 기존의 완전체에 새로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덜어내야 하는데, 무엇을 덜어내고 그 대신 무엇을 넣어 그 완전함을 유지할지가 가장 큰 숙제다. 새로운 미스 디올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앞서 말한 로즈우드와 핑크 페퍼콘이다.
‘사랑의 향기를 만들어주세요’라는 크리스찬 디올의 주문이 있었다. 향수에 어떻게 표현했나? 사랑과 향수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듯, 향수를 뿌려 나의 향기를 공유하는 거다. 수많은 향료 중에서 장미가 사랑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장미는 그 향이 퍼지는 순간이 마치 사랑을 찾아가는 순간처럼 다가온다. 그러한 향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탈리 포트만과 작업한 웹 다큐멘터리를 봤다.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에서 미스 디올이 1947년부터 표현했던 여성상인 자유롭고 대담하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당신도 그런 여성에 매력을 느끼나? 그 시절 치고는 굉장히 모던한 여성상이라고 생각하고, 나에게도 당연히 매력적이다. 최근 현대 여성들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서 더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웃음)
나탈리 포트만이 수년간 뮤즈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뮤즈로 떠올려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단 한 번도 없다. 얼마 전 파리에서 열린 미스 디올 탄생 70주년 기념 디올 전시회의 오프닝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미스 디올에 꼭 맞는 여성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녀의 열린 사고방식,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는 미스 디올에 완벽하게 어울린다. 또 알다시피 그녀의 미소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자신을 향기로 표현한다면? 평생 조향사로 살아오면서 처음 들어보는 재미있는 질문이다. (잠시 생각하다) 파촐리가 적당하겠다. 파촐리는 여성, 남성 향수에 모두 사용되는 원료고, 조향 과정에서 1그램만 추가해도 향의 균형이 잡힌다. 또 조향 조합 안에서 40%까지 사용해도 다른 향과 조화롭게 섞이면서 공격적이지 않다는 특징을 지녔다. 어떤 노트와 연결시켜도 거부감이 들지 않고. 시트러스, 플로럴, 우드에 아주 약간의 파촐리 향을 가미하면 깊이감이 생기고 신비로움이 더해지기도 한다. 아, 순식간에 도발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미스 디올 향을 맡았을 때 여성스럽다가도 순간 도발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파촐리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비 오는 제주도의 향이 떠오를 것 같다. 고맙다. 내가 좋아하는 비와 섬의 향기로 기억되다니. 좋은 것 같다. 비가 없으면 내가 사랑하는 꽃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