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커트가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그것도 어중간한 길이의 보브 단발이 아니라 뒷머리를 바리캉(헤어 클리퍼)으로 쳐낸 듯 극도로 짧고 과감한 형태로. 이 글을 읽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반항적 신여성이나 외모를 꾸미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여성. 그간 여성이 쇼트커트로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는 그만큼 한정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좀 다르다. 이미 가지고 있던 무심한 듯 반항적인 멋에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매력까지 다채로운 멋을 지닌 쇼트커트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맥퀸 쇼의 헤어부터 살펴보자. 포마드를 발라 깔끔하게 빗어 넘긴 슬릭한 쇼트커트, 앞머리를 아주 짧게 일자로 자른 처피 뱅 쇼트커트, 볼륨을 한껏 살린 금발의 쇼트커트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 쇼트커트를 한 모델들이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매력을 발산했다. 한편 MSGM 쇼에선 모발의 자연스러운 텍스처를 살린 쇼트커트를 선보였는데, 컬러풀한 의상과 시너지를 이뤄 숲속 요정 같은 청초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발렌티노 쇼에 등장한 쇼트커트는 또 다르다. 마스카라를 청키하게 바르고 앞머리를 사선으로 쓸어 넘긴 모델은 1960년대 스타일 아이콘 트위기를 떠올리게 할 만큼 페미닌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여성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을 여성성의 상실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다채로운 쇼트커트의 매력이 검증된 지금, 짧은 머리에 특정 젠더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원하는 대로 스타일링할 수 있는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쇼트커트, 짧은 머리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실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