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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연기를 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이윤지는 그동안 어느 때보다 벅차오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소 건조한 느낌의 화보를 제안한 것이 미안할 만큼 감정이 충만한 눈은 몸에 밴 듯한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지 8개월이 된 여배우. 그 전까지 살아온 것과 완전히 다른 곳에 축을 두고 살아가는 지금 이윤지는 행복하다. 완전한 행복을 만끽하는 상태라기보다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감정들을 해석하는데 그 모습이 뭐랄까, 황홀해 보였다. “때로 삶의 모든 과정을 낱낱이 대중에게 보여주는 배우라는 직업이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만큼은 제 삶의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윤지는 지금 처음이라 서툰 일들을 하나하나 해내고 그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새로운 우주를 차분히 유영하고 있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힘들고 행복하다는 그녀가 별안간 중얼거린다.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촬영 틈틈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더군요. 버릇 같은 건가요? 워낙 음악을 달고 살기도 하고, 첫 컷 찍은 걸 보니 뭔가가 빠진 것 같더라고요. 빨리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들은 음악만큼 결과가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음악은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 같은 거예요. 물론 거울로 제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요.

말하자면 분위기에 맞게 감정을 정리하는 거죠? 에드 시런부터 카를라 브루니까지 플레이리스트가 꽤 다양하더군요. 전 다양한 음악을 좋아해요. 국악도 듣고 클래식도 듣고 잡식성이죠. 원래는 눈뜨자마자 음악부터 틀어놓는데 뽀로로와 함께한 지 좀 됐어요.(웃음) 좀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세상에 남는 마지막 예술이 음악일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그때그때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편인데 음악으로 하는 게 가장 쉽고 효과가 빨라요. 요즘 다양한 감정이 충만한 삶을 살다 보니 비워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네요.

그러고 보니 엄마가 된 지 8개월이 지났어요. 흔히 아이를 낳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고 각오했어요. 그런데도 너무너무 다르다 싶어요. 8개월 동안 제가 느낀 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제가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저를 엄마로 만든다는 거예요. 지금도 매일매일 그래요. 얼마 전에 TV에서 유니세프 캠페인이 나오는데 끝까지 못 봤어요. 갑자기 가슴에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나사를 박고 세게 조이는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 변화들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어떤 존재가 생겨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전에 제가 스스로 뭔가 집어 먹은 느낌? 책임감, 사랑 이런 것들이요.

그런 변화들이 일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물론이에요. 스물 몇 살, 서른 살 무렵에 한 역할들도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같은 역을 다시 맡는다면 그때와 분명히 다를 거예요. 앞으로 어떤 역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겪는 이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표현될지 무척 궁금해요. 엄마 역을 하든 의사 역을 하든 좀 더 깊어지기를 바라요. 저만 느끼는 건지 모르지만 외모도 어딘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하지만 몸매는 출산 전과 다를 바 없어요. 임신 전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임신하기 2~3년 전이 제 생애 가장 운동을 많이 한 시기였죠. 건강한 아이를 임신하기 위한 운동들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생각보다 출산 이전의 몸으로 빨리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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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찌긴 쪘었나요? 한 13kg? 최근에 다 빠졌어요. 항상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기 안고 스쿼트 동작을 많이 해요. 허리에 힘 빡주고 스쿼트 동작을 하면 다음 날 엉덩이가 빵빵하죠.(웃음) 아이가 10kg 가까이 되거든요. 보통 헬스클럽을 가도 10kg씩 들지는 않으니까.

좋은 팁인데요? 그동안 해온 작품을 돌아보면 매력적이고 캐릭터가 분명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아직까지는 저랑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 역할은 없었어요. 아주 작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 있어서 끌렸던 것 같아요. 저랑 판이하다고 판단되는 역할이라면 반대로 제 안에서 조금이라도 공통점을 찾으려고 애를 썼을지도 모르겠어요. 나와 내가 맡은 역할 사이의 거리가 끊임없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끊어지거나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참 묘해요. 제가 캐릭터화되든, 캐릭터가 저 같아지든 계속 요리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많은 요리를 해본 것 같지는 않아요. 많은 작품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큼 잘 안 되었달까? 너무 솔직했나?(웃음)

 

근작인 <구여친클럽>의 집착녀 끝판왕 캐릭터가 재미있었어요. 그런 모습 또한 가지고 있나요? 집착을 너무 안 해서 문젠데.(웃음) 그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대사가 없는 과거 회상 신이었는데 대본에는 ‘행패를 부린다’ 정도로 나와 있었거든요. 그냥 변요한씨랑 저랑 풀어놓고 찍는데 제 입에서 생각보다 다양한 대사가 나오는 거예요. “누구 만났어?” “왜 전화 안 받았어?”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고 내가 생각한 집착하는 여자의 모습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내 안에 없던 모습이 아닌가…?(웃음) 그래서 신나게 행패 부렸어요.

딱히 집착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니고요? 그렇기도 했는데.(웃음) 그런데 쿨한 척 ‘나 괜찮은데? 너도 놀아’ 하는 식으로 다 이해하는 척해놓고 혼자 후덜덜 한 기억은 많아요. 갑자기 소설 쓸 때가 많거든요. 상대가 주차장에서 전화하다가 올라온 건데 ‘방금 주차했는데 왜 집에 바로 안 오지?’ 하는 생각이 들면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요. 전화를 수십 번씩 하고 난리가 나죠. 아…, 집착녀네. 나 집착녀였어.(웃음)

얼마 전에 마리끌레르 영화제 사회를 봤죠? 벌써 세 번째인데 영화제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매거진에서 영화제를 주최한다는 게 대단히 특이한 접근이라 생각했어요. 사실 전폭적인 지지 없인 매거진에서 그렇듯 영화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이 매거진은 왜 이렇게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하는지도 궁금했고. 이렇게 계속 이어진 게 신기해요.

상영작도 보셨나요? 처음 사회 볼 땐 봤어요. 이번엔 수유 중이어서….(웃음)

기승전 ‘육아’네요.(웃음) 인스타그램을 보면 여행과 독서도 즐기는 것 같던데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은 없어요? 그런 것을 대체할 만큼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나 커요. 특히 다른 사람을 보면 울고 나한텐 웃어줄 때.(웃음)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땐 아주 작은 주먹을 늘 꼭 쥐고 있었는데 생후 30일 넘으니까 슬슬 주먹을 펴고 있는 날도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얘가 이제 나를 좀 믿어주나? 제가 그 아이만 할 때는 어땠는지 직접 보지 못하잖아요. 자식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고 크는지 보이고, 제 기억과 합쳐져 한 사람의 일생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제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다섯 살 무렵?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기억뿐이거든요. 근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 기억을 보충하는 것 같아요. 아이도 나중에 그러겠죠? 그래도 이제 슬슬 짬을 내서 영화도 보러 가고 그래요.

무슨 영화 봤어요? 얼마 전에 <아가씨> 봤어요. 그리고 또 좋았던 영화는… <캐롤>! <캐롤> 아주 좋았어요. 색감, 사운드 전부요. 또 뭐 봤더라… 카톡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