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남
프린트 셔츠 생 로랑(Saint Laurent).

확실히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남자이긴 했다. 첨예해지는 남녀 간의 혐오,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에릭 남은 예상치 못한 스위트함으로 ‘1가족 1에릭 남’이라는 말까지 유행시키며 정중하고 나이스한 하나의 ‘심벌’로 자리 잡았다. 세련된 매너, 귀여움, 착함, 유창한 영어 실력과 낄 데와 빠질 데를 아는 똑똑한 센스. 우리가 에릭 남에 대해 아는 건 이 정도다. 에릭 남에게 기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인터뷰 당일에도 에릭 남은 가족과 멕시코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길이었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도플갱어처럼 닮은 형제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한 방에 물리칠만한 단란함을 가득 품은 채 올라왔다. 하지만 에릭 남이 멕시코행을 택한 건 이대로 지내다간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가 항상 흔들림 없이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면 그건 자신도 그렇게 대우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민함, 불안함, 조급함, 싱어송라이터.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에릭 남은 이렇다. 그렇다고 그가 매너 없다거나 귀엽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에릭남
점퍼와 후디, 팬츠 모두 골든구스 디럭스(Golden Goose Deluxe).

갈란트, 타블로와 ‘Cave Me In’을 발표했다. 셋의 조합이 신선하다. 나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타블로 형과 갈란트는 작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만났고 내 친동생 에디가 갈란트 회사 매니저와 친해서 셋이 미국에서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콜라보레이션 얘기를 하는 중에 에릭도 같이 하자는 말이 농담반 진담 반으로 나와서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다. ‘대박 나자’라는 마음보다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순수함으로 진행한 작업이었다. 그래서인지 곡이 나오기까지 꽤 오래 걸렸는데 반응이 좋아서 감사하다. 갈란트는 미국에서 녹음을 다 하고 나는 하이그라운드에 가서 타블로 형과 같이 녹음했다. 음악적으로 형에게 좀 배우고 싶기도 했고.

갈란트 외에도 콜라주, 팀발랜드 등 해외 아티스트와 작업을 많이 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게 흥미로웠고 생각보다 일렉트로닉에 목소리가 잘 어울려서 놀랐다. 함께한 아티스트는 본인의 취향인가?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EDM이 대중이 좋아하고 찾아 듣는 음악이 아니지 않나. 미국 시장에서 도전이라도 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스포티파이에서 음악을 듣다가 너무 좋은 음악이라 누군가 보니 콜라주였다. 동생 에디에게 아는 팀이냐고 물어봤더니 전에 나에게 곡을 준 팀이라고 하더라. 동생이 나의 해외 활동을 전부 맡아주고 있어서 그다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랑 아주 잘맞는 친구들이었다. 아직 공개 안 된 곡이 서너 곡 더 있다. 언제 어떻게 내야하나 고민 중이다.

 

정식 앨범 계획은 어떻게 되나? 하하. 3월에 싱글이 나올 예정이고 준비되는 대로 미니 앨범을 낼 계획이다. 직접 쓴 것만 해도 스무 곡 가까이 되는데 작업하면서 제일 어려운 건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워낙 많아서 작업한 곡도 다양하다 보니 한 앨범에 싣기 애매하다는 거다. 콜라주와 함께 쓴 곡도 있고 제프 버넷이랑 쓴 곡도 있고 다른 국내 아티스트, 해외 아티스트들과 쓴 곡도 많은데 이걸 다 어떻게 조화를 시킬까가 제일 큰 고민이다.

한마디로 에디팅 문제다. 맞다. 그게 시간이 걸린다. 내가 좀 성격이 급하기도 하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끝난 후 쉬고 있으려니 조급하고 불안해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방송을 시작했더니 앨범에 집중할 시간이 없더라. 정답이 없다. 지금도 이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음원 순위 같은 것들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야 한다. 미국은 순위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 활동보다 해외에서 내는 곡들을 더 찾게 되고 선호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해외 EDM 아티스트 쪽에서 연락이 왔다. 동생과 얘기 중이고 갈란트에 이어서 누구와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런 친구들과는 좋은 음악만 만들자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근데 한국에서는 순위가 중요하니까 부담스럽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뮤지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대중에겐 다른 부분이 어필되고 있다. 전에는 속상하고 힘들었다. 그것 때문에 음악을 아예 못 했다. 회사에서 계속 이 방향으로 가자고 하기도 했고 난 그것 때문에 계약한 게 아니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방송 중 어눌한 내 말투가 재미있게 보인다는 걸 알지만 나중에 방송을 보며 ‘저런 뜻이 아니었는데?’ 하고 당황한 적이 많았다. 물론 감사한 면도 분명히 있지. 한국에서는 방송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포기할 순 없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에릭 남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나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1가족 1에릭 남’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에릭 남 안의 의도하지 않은 어떤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 모습을 좋게 보는 걸 거다. 그런 부분이 주목받아서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난 그냥 나대로 행동했는데 너무 이상했다. 아직도 가끔씩 웃기기도 하고. 매너가 좋다고? 문 열어주는 게 왜? 나는 당연한건데. 이런 사소한 부분이 개념 있어 보인다고 하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 들어 ‘이런 이미지가 부담스럽지 않으냐, 행동이 조심스러워지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스스로는 데뷔 전과 지금의 행동에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슬슬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 때문에 예민해졌기 때문인지 방송을 안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이번에 멕시코에 다녀온 것도 한국에 계속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답답하던 차에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기분 전환이 됐나? 이제 봐야지. 도착하자마자 이걸 하고 있으니. 그래도 노력하고 잘해봐야지.

 

에릭남
스트라이프 셔츠 J.W. 앤더슨(J.W. Anderson).

올해 서른이 됐다. 서른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 살면서 갖는 태도나 생각이 더 중요하지 나이 때문에 제한을 두는 게 싫다. 그런데 주변에서 워낙 ‘서른이야 서른이야’ 하니까 ‘내가 다르게 해야 되나?’ 생각하게 된다. 최근 촬영하는데 애교 부리면서 하트 뿅뿅 날려달라고 하기에 그때 ‘저 이번에 서른 됐어요’ 하고 써먹긴 했다.(웃음) 모르겠다. 의미를 굳이 둔다면 서른이 진짜 시작인 것 같긴 하다. 20대 때 이것저것 재밌게 했던 걸 제대로 모아서 빵 터뜨린다는 마음.

노엘 갤러거와 인터뷰한 이후 인터뷰어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인터뷰를 할 때 대본이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사전 조사를 하기도 하나? 늘 했다. 전에 했던 토크쇼나 인터뷰 영상, 근황을 많이 본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여배우면 다이어트를 어떻게 하는지 같은 거. 솔직히 록을 잘 듣지 않아서 노엘 갤러거에 대해 잘 몰랐다. 축구를 좋아한다기에 축구 선수였던 내 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최대한 그런 부분을 대본에 반영한다. 작가에게 이런 부분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면서 만들어간다.

에릭 남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가?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걸 좋아했는데 한국에 와서 그런 면이 많이 없어졌다. 방송인, 가수라는 직업이 워낙 내 안의 모든 걸 계속 쏟아붓는 일이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말을 잘 안 하게 되고 피곤해서 즐겁고 재밌기보다 스트레스가 많아졌다. 그게 안타깝고 아쉽긴 하다. 누구를 만나면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나는 상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은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묘하다.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살피고 어디까지 말해도 되나 고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을 잘 안 만나게 된다.

에릭 남은 어떤 게 제일 싫을까? 사실 이건 앞선 내 질문에 에릭 남이 지금처럼 대답할 줄 몰랐기에 준비한 질문이긴 하다. 이미 앞에서 싫은 걸 전부이야기한 것 같다. 하하. 몇 개월 전에 공항 서점에 갔었는데 책이 하나 있더라. 제목이 ‘Don’t be an Asshole’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웃음도 터지고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이 너무 공감이 갔다. 세상에 좋고 착한 사람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허세 넘치고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이 세상에 마이너스가 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진부하고 어쩌면 순진한 말일 수도 있지만 다 좋게,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말을 굳이 왜 하나? 안 해도 되는, 사람을 다치게만 하는 행동이나 말을 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랑 워낙 붙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더더욱 혼자 있으려고 한다. 읽을 거리 들고 나와서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평화롭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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