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CHANEL IN HAMBURG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완벽했던 이번 샤넬-함부르크 공방 컬렉션은 영국 첼로이스트이자 작곡가 올리버 코티스와 실내악단 레조난츠 앙상블이 함께해 더욱 빛났다. 특히 올리버 코티스가 이번 컬렉션을 위해 새로 만든 실내악은 컬렉션을 한 편의 뮤지컬처럼 만들어주었다. 콘서트홀 중앙에 위치한 둥근 무대와 무대를 감싸며 배치된, 파도의 곡선에서 영감을 받은 객석 사이사이를 오가는 런웨이는 워킹하는 모델들에게는 다소 힘들어 보였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마치 한 편의 행위예술을 보는 듯했다.
유럽의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2월, 독일 함부르크를 상징하는 엘베 강가를 거닐며, 함부르크에서 쇼를 여는 건 어쩌면 칼 라거펠트가 오래 마음에 품은 소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자란 곳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고향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정과 그리움, 애틋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한마디로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곳. 칼 라거펠트 역시 그랬으리라. 일찌감치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지만, 자신의 뿌리가 함부르크라는 사실을 잊었을 리 없다. 하지만 칼 라거펠트에게 고향에서 선보이는 이번 파리-함부르크 컬렉션의 의미는 단순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칼 라거펠트는 새 컬렉션 발표를 앞두고 함부르크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함께 지난해 초에 문을 연 엘브필하모니(Elbphilharmonie) 콘서트홀의 완벽함과 이번 컬렉션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은 스위스 건축 회사 자크 헤르조그 앤 피에르 드 뫼롱(Jacques Herzog and Pierre de Meuron)이 설계한 건축물로, 문을 연 지 1년 만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건축적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과거 카카오와 커피를 보관하던 창고 위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110미터 높이의 유리로 된 파도 모양 지붕을 이고 강을 낀 채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압도적이다. 특히 붉은 벽돌로 지은 창고 건물에 미래적인 투명한 유리 지붕을 덮기 위해 꼬박 10년의 공사 기간, 약 1조원 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사비가 들었다고 한다. 이 세기의 건축물이 완공되자마자 전 유럽의 관심이 함부르크로 쏠렸다. 칼 라거펠트 역시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이 개관하기 전부터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고, 그 애정은 이번 파리-함부르크 컬렉션을 선보이는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때 번성한 항구도시이자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도시 함부르크의 새로운 랜드마크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이 상징하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컨셉트를 컬렉션 전반에 담아내며 컬렉션 안팎으로 자신의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칼 라거펠트는 함부르크의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를 축으로 삼아 항구도시 특유의 이미지를 녹여내고 여기에 샤넬 고유의 모더니즘을 더했다. 이를테면 배를 타는 항해사를 상징하는 마린 룩의 전형적인 요소인 스트라이프와 그 실루엣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특히 쇼 전반부에 선원의 복장을 재해석해 피 코트와 드롭 프런트 트라우저, 줄무늬 톱, 모자 등을 새로운 형태로 디자인한 룩을 대거 선보였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항구도시이니만큼 두꺼운 스웨터와 모자, 장갑 등이 필수였던 과거 선원들의 모습에 샤넬만의 코드를 가미해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인 당당한 샤넬 룩을 완성했다. 예를 들어 세일러 칼라 셔츠나 다소 타이트한 재킷, 미니스커트, 엑스트라 와이드 트라우저와 같은 옷들은 “한 번도 물속으로 뛰어든 적 없는” 76명의 선원들을 여성스럽고 아름답게 변신시키기에 충분했다. 스타일링 역시 돋보였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머리에 튈 스카프를 두른 채 핑거리스 장갑을 끼고 롱 니트 삭스에 비즈 보 장식이 달린 보빈 힐 브로그를 신은 모습은 추운 겨울날에도 멋을 잃지 않는 완벽한 샤넬 레이디의 모습이었다.
공방 컬렉션답게 샤넬 하우스 장인들의 솜씨는 이번 파리-함부르크 공방 컬렉션에서도 빛을 발했다. 특히 항구도시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바다와 파도, 밧줄, 닻 등을 모티프로 한 장식이 자수와 주얼리로 승화되었다. 트위드를 브로드클로스나 캐시미어, 플란넬 소재와 조합한 룩과 실크 크레이프를 시폰이나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저지와 번갈아 사용한 룩은 여성스럽고 화려하며 완성도 높은 공방 컬렉션만의 진가를 실감나게 했다. 특히 네이비와 블랙 앤 화이트가 주를 이룬 컬렉션에 컬러를 더한 룩은 함부르크 부둣가에 있는 건물들의 벽돌이나 화물선에서 부려놓은 형형색색의 컨테이너에서 착안해 우븐 패턴으로 완성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컨테이너 박스를 그대로 축소한 백은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또 깃털, 자수, 라인스톤, 자개, 비즈까지 컬렉션을 위해 사용된 모든 장식은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세련되고 화려한 이브닝 파티를 위한 룩에 더하기에 손색없었다. 선원 모자, 긴 담배 파이프, 더플백 등 다소 투박하고 소박해(?) 보인 쇼 전반부와 달리 중반 이후에 선보인 화려한 드레스와 스커트는 활동적이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샤넬 레이디를 완성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펜슬 스커트와 우븐 트위드 재킷을 매치한 룩과 블랙 앤 골드 트위드, 블랙 새틴 소재의 세일러 스커트에 크레이프 블라우스와 넓은 레가트 스카프를 두른 모습은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추위와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으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한편 샤넬-함부르크 공방 컬렉션 역시 다양한 액세서리가 눈길을 끌었다. 긴 항해를 준비하며 짐을 싸던 선원들의 세일러 백은 튼튼한 밧줄 끈을 단 캐주얼한 스타일로, 화려한 생활을 대변하는 보석함은 앵커 볼트, 구명 부표, 컨테이너를 본뜬 디자인으로 재해석되었으며, 샤넬을 대표하는 가브리엘 백은 함부르크를 상징하는 벽돌의 색에서 영감을 받아 우아한 체크 트위드로 선보였다. 이 밖에도 닻 모티프 귀고리와 브로치, 체인 장식 목걸이와 팔찌 등은 밧줄을 아무렇게나 감은 것처럼 보이도록 해 세련되면서도 쿨하게 연출되었다.
샤넬-함부르크 컬렉션으로 고향을 찾은 칼 라거펠트는 나이브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지 않았다. 오히려 함부르크라는 항구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주목한 듯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달라야 한다”라는 코코 샤넬의 말을 떠올린 것일까, 칼 라거펠트는 늦은 나이에 자신의 고향에서 다른 미래를 꿈꾸는 듯했다. 그리고 그 시도만으로 그는 이미 성공했다. 이번 샤넬-함부르크 공방 컬렉션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