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샤넬

샤넬
CHANEL

가브리엘 샤넬의 남다른 서사는 샤넬 컬렉션에 힘을 불어넣는다.
2022 리조트 컬렉션 역시 그 힘을 빌렸다.
버지니 비아르는 쇼를 구상하며 가브리엘 샤넬과 가까운 사이였던
영화감독 장 콕토와 그의 작품 <오르페우스의 유언(Le Testament d’Orphée)>(1960)을 떠올렸고,
검은 말의 머리를 한 사람이 빛의 채석장으로 내려오는 장면에서 받은 영감을 전하기 위해
레보드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에 위치한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으로 디지털 관객을 초대했다.
대부분의 룩은 블랙, 화이트, 혹은 둘의 강렬한 색대비로 구성돼
마치 흑백영화처럼 극적인 느낌을 주었다.
짐작컨대 쇼 이후 많은 이들이 장 콕토의 영화적 유산을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는 샤넬의 인생을 통해 그만큼이나 뛰어난 인물들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는 버지니 비아르의 코멘트처럼 말이다.

 

  DIOR 디올

디올
DIOR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쇼 장소로 선택한
파나티나이코 경기장(Panathenaic Stadium)은
기원전부터 여신 아테나를 위한 축제의 장으로 사용됐다.
웅장함을 더하는 횃불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모델들은 녹슨 듯한 메탈 벨트나 키톤(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흔히 입던 튜닉의 일종)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분위기를 이어갔다.
치우리는 이번 리조트 컬렉션을 준비하며
1951년 그리스 판테온 신전 앞에서 촬영한 무슈 디올의 역사적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미지 속 전경처럼
웅장한 신전이나 거대한 조각상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섬세한 드레이핑과
고전적인 드레스 실루엣, 벽화를 재현한 듯 독특한 자수,
이따금 등장하는 스포티한 디자인의 룩이 조화를 이룬 쇼는
무슈 디올이 감명받았던 그리스 특유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미감을 함께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GIVENCHY 지방시

지방시
GIVENCHY

“미국에서 태어나 갖게 된 뿌리와 파리에서 맞이한 새로운 삶,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매튜 M. 윌리엄스는 리조트 컬렉션에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구성하는 미국 문화와 파리 감성을 동시에 담았다.
미국에서 출발해 파리에 당도한 그의 이야기를 재현이라도 하듯
런웨이 장소를 파리 기차역으로 선정하고,
자유롭되 실용성을 강조한 미국 특유의 디자인 스타일과 테일러링,
비즈 자수 같은 프랑스 쿠튀르 스타일을 융합한 것.
이뿐 아니라 그래픽 아티스트 치토(Chito)의
쿨한 그래픽 프린트를 정교하고 우아한 디자인의 옷에 입히고,
보머 재킷과 워커 부츠처럼 스트리트 패션을 대표하는 아이템과 드레스, 수트 등
클래식한 아이템을 교차함으로써 상반되는 것들이
이뤄내는 합을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했다.

maxmara 막스마라

막스마라
MAX MARA

막스마라의 리조트 쇼는 이탈리아 이스키아(Ischia)섬에서 진행됐다.
이스키아는 나폴리만에 위치한 섬으로,
1950년대부터 상류사회의 놀이터로 불려온 곳이다.
이안 그리피스는 트루먼 커포티의 책
<로컬 컬러(Local Color)>에서처럼,
한곳에 길게 머물며 그 장소와 진정으로 교감하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편한 스타일의 드레스, 트롤리에 돌돌 말아 넣어도
구김이 가지 않는 기능성 저지 소재의 101801 코트,
해변을 연상시키는 에스파드리유 샌들은 그의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고전적인 ‘리조트’ 컬렉션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펜디
FENDI

킴 존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펜디 가문 여성들의 우아함을 전하는 데 몰두했다.
언제라도 일거리를 잔뜩 담고 떠날 수 있는 커다란 북 토트와 근사한 디너를 위한
클러치 백, 자연을 연상시키는 색채나 패턴, 신체를 과하게 노출하지 않는 디자인,
발등을 덮는 낙낙하고 활동성 있는 트라우저까지.
실비아 벤투리니의 옷장에서 빌려온 듯한 룩은
그의 설명을 담백하게 뒷받침했다.
칼 라거펠트처럼 아이코닉한 인물이 오래도록 자신의 색으로
이끌어온 브랜드를 물려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과업을 짊어진 패션계의 젊은 후임자 대부분이
기존과 완전히 다른 무드로 화제성을 높임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싶어 할 때,
킴 존스는 묵묵히 펜디와 라거펠트의 유산을 보존하는 일에 열중해왔다.
이번 컬렉션 역시 엄청난 파장이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 관객에게 킴 존스의 펜디를
오래도록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겼다.

 

GUCCI 구찌

구찌
GUCCI

“모든 것이 시작된 그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제 책임이자 특권입니다.
역사의 자물쇠를 열고, 출발의 끝자락에서 서성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언제나처럼 심오한 축사와 함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하우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또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했다.
구찌가 지나온 시간에서 유의미한 발자취를 찾아내려는
그의 노력은 컬렉션 곳곳에 스며 있다.
하우스의 오랜 영감의 원천인 승마에 관한 메시지가 모자, 부츠,
재킷과 홀스빗 장식을 더한 액세서리에서 포착됐고,
프리다 지아니니의 전설적인 옐로 벨벳 수트가 원작과 흡사하게 재현됐으며
귀네스 팰트로가 입어 세계적으로 이목을 끈 톰 포드의 레드 재킷 역시
현대적으로 가공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임자의 역작을 이토록 쿨하게 소개하는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미켈레는 이번 쇼를 통해 하우스의 역사적인 순간을
성공적으로 자축하는 동시에 자신의 천재성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LOUIS VUITTON 루이비통

루이 비통
LOUIS VUITTON

루이 비통의 쇼는 프랑스 세르지퐁투아즈(Cergy-Pontoise) 지역의
악스마죄(Axe Majeur)에서 열렸다.
대지 미술의 거장 다니 카라반(Dani Karavan)이 설계한 이 공간은
콘크리트, 돌, 철과 자연의 요소가 어우러져 가상현실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며,
다양한 소재와 요소를 창의성에 기반해 융합하는 루이 비통의 디자인 철학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마치 상상 속 문을 하나씩 통과하는 것처럼 독특한 시각적 효과가 펼쳐지는 가운데
선명한 색감과 기묘한 아트 프린트, 동서양을 아우르는
절묘한 디테일로 완성된 쇼피스가 연이어 등장했다.
리조트 컬렉션을 통해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각각의 룩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묶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독보적인 능력이 빛을 발했고,
예술적 공간이 주는 특별한 기운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BURBERRY 버버리

버버리
BURBERRY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전통적이고 고리타분한 개념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리카르도 티시는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당면한 과제에 대담하게 도전했다.
여성 모델에게 오래도록 ‘남성의 것’으로 여겨온 수트를,
남성 모델에게 오래도록 ‘여성의 것’으로 꼽혀온 스커트를 입힌 것.
물론 이 같은 시도가 대단히 새롭다거나 젠더 관념을 바꾸는 데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안겨주진 못했지만
보수적인 고객을 상대하는 하우스 브랜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임이 분명하다.
이 밖의 컬렉션 룩은 지난 몇 시즌과 마찬가지로 하우스를 대표하는
베이지, 캐멀 컬러 중심의 무난한 스타일로 구성됐으나
간간이 선명한 컬러 블록이 더해져 지루한 느낌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NINA RICCI 리나 리치

니나 리치
NINA RICCI

니나 리치의 리조트 컬렉션은 한동안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니나 리치를 다시금 패션 인사이더들에게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선명한 세룰리안블루와 틸 블루, 네온 오렌지를 주축으로 한 색채와
다이버를 연상시키는 발라클라바 스타일의 모자,
기다란 오리발을 닮은 슬릿 팬츠가
해변 풍경과 감각적인 조화를 이룬 것.
‘바다를 향한 애정’이라는 흔한 소재도
이전부터 해양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온
루시미 보터와 리시 헤레브르의 진실된 행보와 만나면
뻔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쇼였다.

질 샌더
JIL SANDER

미니멀 스타일의 추종자들에게
질샌더의 루크 & 루시 마이어는 신적인 존재다.
모던한 디자인을 주로 선보이지만,
때때로 다채로운 색이나 패턴을 입혀
단조로움을 벗어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번 리조트 컬렉션에는 이러한 장점이 극대화됐다.
브랜드 고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고수하되
기하학적 디자인의 슈즈, 이국적인 주얼리,
예술적인 프린트와 독특한 디테일 등
진부함에서 벗어나는 요소를 가미한 것.
특히 가죽을 꼬아 만든 이어링과 네크리스에
평범한 버건디 팬츠 수트를 매치한 룩과
하나의 거대한 패널 같은 화이트 코트에
독특한 실루엣의 팬츠를 스타일링한 룩은
질샌더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