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URE DESIRE
직전의 몇 시즌은 패션 미니멀리스트에게 꽤 지난한 시간이었다. 콰이어트 럭셔리의 일환으로 떠오른 올드머니 코어나 오피스 코어의 성적이 예상보다 약세를, 이와 반대로 스포티한 블록 코어나 사랑스러운 코케트 코어가 강세를 띠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시즌 ‘드뮤어 코어(demure core)’의 등장과 함께 전세는 역전될 전망이다. 드뮤어는 단어가 본래 지닌 뜻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룩을 지향하는 트렌드로 지구적인 색감, 디테일 없이 심플한 형태, 몸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디자인에 바탕을 둔다. 이를 브랜드에 빗대자면 눈을 편안하게 하는 컬러 팔레트와 낙낙한 실루엣을 선보이는 보테가 베네타, 질샌더, 막스마라 같은 이탤리언 럭셔리 하우스에, 인물에 비유하자면 영화 <노팅 힐>에서 세계적인 스타지만 그 이면에 평범함과 고독, 차분함을 간직했던 애나 스콧 역의 줄리아 로버츠에 가까울 것. 누군가는 화이트 셔츠나 카디건, 플루이드 재킷 같은 특정 아이템이 드뮤어의 필요조건이라 주장하지만, 추상적 형용사에서 비롯한 스타일이기에 명확한 공식을 규정하기보다는 그야말로 ‘드뮤어한’ 분위기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형용하는 태도야말로 이 코어의 핵심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