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usto Puglisi

1990년대의 아이콘 캐럴린 베셋 케네디를 오마주했다고 밝혔지만, 블랙 & 화이트를 주요 컬러로 선택한 것 외에 미니멀리즘을 트렌드로 이끈 그녀를 연상시킬 만한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튼과 리넨 소재를 앞세워 레이스, 러플, 크로셰 등 지극히 여성스러운 디테일을 고수했으니까. 물론 비즈와 메탈 디테일로 꽃 오브제를 구현한 라이더 재킷부터 피날레에 등장한 발레리나 튀튀 스커트까지 평소 파우스토 푸글리시가 애정을 기울이는 글램록 요소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탤리언식으로 재해석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푸글리시의 팬이라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만한 쇼임은 분명했다.

Jil Sander

컬렉션의 여운이 꽤 오랫동안 진하게 남았다. 새하얀 공간(자하 하디드의 작품) 과 밀라노의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잔잔한 음악마저 전부 ‘질샌더’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대변하는 듯 보였고 그 사이를 채운 룩 역시 너무나 청초하고 아름다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미니멀리즘은 차갑다는 대중의 편견을 바로잡고 싶었어요. 드라마틱하며 여성적인 면을 부각하려고 노력했죠.” 디자이너 듀오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흠잡을 곳 없는, 낙낙한 화이트 셔츠 원피스를 시작으로 곳곳에 플리츠 디테일을 더한 테일러드 코트, 드레스가 등장했고 바닥에 끌릴 만큼 긴 핸드메이드 프린지가 장식된 셔츠며 날렵한 핏의 스모킹 재킷까지 하나같이 로맨틱했으니까. 루크 마이어와 루시 마이어 부부의 데뷔 쇼는 질샌더 고유의 DNA에 이들만의 부드러운 색을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