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L SANDER

“모두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잖아요. 기분이 좋아지는 힘 있는 컬렉션을 계획했죠.” 질샌더를 이끄는 디자이너 듀오는 브랜드 고유의 날렵하고 정제된 느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화려한 레이스를 더한 란제리 드레스와 과감한 패턴, 큼지막한 액세서리들이 바로 그 예다. 특히 패턴 원단을 사선으로 재단한 바이어스 재단 드레스가 눈에 띄었는데, 강렬한 패턴과 어우러져 별다른 장식 없이도 입체적으로 보였다. 또한 지난 시즌의 연장선인 크로셰 니트 드레스나 메탈릭 소재, 비비드한 컬러를 적절히 활용해 통일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컬렉션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언제나 절제된 실루엣에 소소한 포인트를 더해 인상 깊은 옷을 만들어내는 질샌더. 이는 절제의 미학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루크와 루시 마이어이기에 가능할 터다.

JIL SANDER

하얀 홀에 나무 의자가 동그란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게스트를 위한 의자는 아니었다. 아치 형태의 창문이 있는 엄숙한 분위기의 이 공간은 밀라노 산업디자인 박물관이다. 루크 & 루시 마이어가 이끄는 지금의 질샌더를 공간으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거다. 듀오는 미니멀리즘이 아닌 ‘순수’를 얘기했다. 디자이너 질 샌더는 미니멀리즘의 대표 주자다. 하지만 이 둘의 옷은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멀다. 형태와 컬러는 단순하지만 룩 하나하나에 더해진 장인정신, 자칫 놓칠 수 있는 디테일은 보는 이를, 무엇보다 입는 이를 감탄하게 한다. 유연한 소재로 선이 굵은 옷을 만드는 것 역시 강점. 니트 소재의 롱 베스트와 슬릿 스커트, 송충이 털처럼 보송보송한 실로 짠 셔닐(chenille) 니트 드레스와 케이프, 무겁게 움직이던 프린지 드레스가 좋은 예다. 아무렇게나 걸쳐도 섹시할 블랙 코트, 어떤 하의와 입어도 멋질 재킷, ‘ 어디서 사셨어요?’라는 질문이 쇄도할 벌룬 블라우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릴 구원해줄 ‘히어로 피스’였다. 교회 예배당을 연상케 한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질샌더의 신도가 됐다. 이런 종교라면 발 벗고 전도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