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HIKER
스타일리시한 청산별곡을 꿈꾸는 컬러풀한 고프코어 룩.






여름이면 으레 바다를 떠올렸다. 반짝이는 수면, 뜨거운 모래사장, 해 질 무렵 낭만으로 물드는 해변의 풍경. 하지만 올해는 그 익숙함을 뒤로한 채 짙은 녹음이 우거진 산속으로 하이킹을 떠날 계획이다. 이번 바캉스는 파도 대신 바람을, 소란한 열기 대신 고요한 여유를 즐길 예정.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한 휴식이 필요한 지금, 자연스럽게 시선은 고프코어 룩으로 향했다. 2026 S/S 컬렉션을 훑어보며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낼 것, 자연에서 유래한 컬러와 무채색 아이템을 선택할 것. 로에베의 하늘색 아노락과 세실리아 반센의 화이트 소프트 셸 재킷, 코페르니의 블랙 스트링 스커트가 유력한 선택지로 떠올랐다. 아웃도어 브랜드 특유의 완벽한 기능성을 갖춘 건 아니더라도, 숲과 도시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기 딱 좋은 세련된 방식의 고프코어 아이템으로 보이기에. 언제부턴가 주말마다 산을 찾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등산을 시작하고 나서 무뎌진 감각이 회복되는 특별한 경험을 한 때문일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숲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반짝임, 흙과 나무, 꽃이 어우러진 자연의 무해한 향까지.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다시 선명해지는 감각.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해야 할 일도, 지나간 일도 멀어지는,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없이 값지게 느껴졌다. 어쩌면 진짜 럭셔리한 경험은 이런 순간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내내 피톤치드 가득한 산속에서 스타일리시한 등산복을 입고 숲멍을 즐기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마감이 끝나면 당장 돌로미티로 가는 베네치아행 비행기와 숙소부터 알아봐야겠다.
패션 디렉터 정평화
THE VERSATILE TANK
때와 장소를 초월하는, 영리하고 쿨한 화이트 탱크 젯셋 룩.






요트에서의 휴식, 패션 스토어에서의 아이쇼핑, 그리고 미쉐린 레스토랑에서의 미식. 1년에 두 번뿐인 휴가를 낙으로 삼는 내게이 세 가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휴가지의 기준이다. 지난겨울을 보낸 이탈리아 포르토피노에 이어 올여름을 지낼 곳으로 모나코를 선택한 것 역시 이 모든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 나라 전체의 면적이 여의도보다도 작은 모나코는 자연과 도심, 휴식과 쇼핑이 경계 없이 어우러져 있어 모든 장소를 아우르는 ‘전천후’ 바캉스 룩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주문처럼 들리지만, 이번 시즌 트렌드로 떠오른 화이트 탱크를 떠올리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탱크의 상징이라 할 도톰한 바인딩은 살리되 밑단을 둥글게 잘라내 구조적 미감을 더한 발렌시아가, 클래식한 원형에 깃털 장식을 더한 빅토리아 베컴, 서머 니트 소재의 탱크와 프린지 스커트를 결합해 드레스를 완성한 가브리엘라 허스트, 미니멀한 점프수트 형태로 재해석한 꾸레쥬 등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하게 진화한 탱크 스타일이 요트와 해변, 다이닝과 부티크를 시시때때로 오가는 모나코 여행 루틴에 정확히 들어맞는 까닭이다. 특히 모나코의 왕비이자 패션 아이콘이었던 그레이스 켈리의 전설적인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자크뮈스의 탱크 드레스는 마치 모나코 여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듯 모나코의 분위기를 완벽히 대변한다. 더없이 쿨한 탱크를 입고 모나코를 누비는 상상이라니! 늦은 밤까지 원고를 쓰고 있는 현실마저 잊게 하는 패션 판타지란 이토록 달콤하다.
패션 디렉터 김지수
RETRO POP ICON
귀족적인 동시에 반항적인, 나폴레옹 재킷을 앞세운 페스티브 룩.





올여름, 출장으로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가게 되었다. 레만호를 따라 펼쳐지는 이 축제는 이름과 달리 팝과 록, 소울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다. 페스티벌을 앞두고 마이클 잭슨의 전기영화 <마이클>을 봤다. 새삼 눈길이 간 건 그의 패션이었다. 강렬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반짝이는 나폴레옹 재킷. 특유의 금실 브레이드와 화려한 버튼, 각 잡힌 어깨는 그를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했다. 과거 황제를 위해 존재한 옷이 ‘팝의 황제’를 만나 또 다른 상징이 된 셈이다. 사실 이 아이템을 지난해 9월 패션위크에서부터 눈여겨봤다. 낡은 데님 진과 스카프를 더해 보헤미안 뮤지션처럼 연출한 앤 드뮐미스터부터 19세기 젊은 귀족의 옷차림이 떠오르는 단정한 실루엣을 선보인 디올, 2000년대 글래스턴베리의 케이트 모스가 연상되는 자유로운 스타일링을 제안한 맥퀸까지. 이 오래된 제복은 2026 S/S 시즌 저마다의 색을 입힌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흥미롭게도 지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Blood on theDance Floor’ 역시 몽트뢰에서 작업한 곡이라고 한다. 몽트뢰행을 위한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은 정해졌다. 이제 남은 일은 오랜 기간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나폴레옹 재킷을 구매하는 것뿐이다.
패션 에디터 최인선
SUMMER FLAPPER
영원할 것 같은 여름밤을 꿈꾸는, 쿠튀르 터치의 모던 플래퍼 룩.






어떤 옷은 아직 떠나지 않은 휴가를 꿈꾸게 한다. 그리고 어떤 옷은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자신을 상상하게 만든다. 휴양지에서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이 된다. 평소보다 조금 더 대담해지고, 조금 더 낭만적이 되고, 평소라면 믿지 않았을 사랑마저 믿게 되는 사람. 그래서일까. 한여름의 바캉스를 떠올리며 이번 시즌 컬렉션을 들여다보는 내내 자꾸만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뷰캐넌이 떠올랐다. 드롭 웨이스트 드레스로 느슨한 관능미를 완성한 베르사체와 페라가모부터 아르데코풍의 시퀸 장식 드레스를 선보인 발렌티노, 각각 프린지 장식과 볼드한 비즈 장식으로 플래퍼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디 아티코와 발망까지. 이번 시즌 런웨이에는 마치 그가 2026년의 휴양지에 도착한다면 입었을 법한 옷들이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문득 이번 여름휴가엔 데이지 뷰캐넌처럼 21세기의 모던 플래퍼가 되어 마이애미의 강변에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강물 위로 번지는 불빛을 바라보며, 데이지와 개츠비가 그랬듯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번 시즌의 플래퍼 룩은 단순한 1920년대의 복고가 아니다. 영원할 수 없기에 더욱 눈부신 찰나를 위해 기꺼이 차려입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플래퍼 룩이 새롭게 읽히는 이유다.
패션 에디터 이다은
VACANCE HOME WEAR
안락한 홈캉스를 꿈꾸며,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원 마일 웨어.





올여름엔 홈 프로텍터를 자처하기로 했다. 끊임없이 오르는 환율과 유류 할증료 탓에 더욱 비싸진 항공료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흑백요리사 2> 열풍으로 우승자 최강록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미스터 초밥왕> 전집을 구매했고, 국내 관객 수 5백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을 보고 만화책 전집을 또 한 번 결제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 때는 어디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며 사놓고 아직 펼쳐 보지 못한 만화책을 읽으면서 홈캉스를 보낼 작정. 마침 이번 시즌은 홈캉스를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몇몇 디자이너도 집 안의 요소에 주목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홈 웨어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폭신한 베개를 입은 듯한 호다코바의 드레스, 앞치마에 위트를 더한 미우미우의 에이프런 룩, 목베개와 하나가 된 베트멍의 저지 트레이닝 재킷, 캐릭터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애슐리 윌리엄스의 파자마 룩이 이를 증명한다. 홈캉스의 조건은 어렵지 않다. 가장 안락한 공간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재치 있는 상상력과 홈 웨어가 결합한 컬렉션이라면 완벽한 방구석 바캉스를 즐기기 위한 준비로 충분하다.
패션 에디터 신예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