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청각적 유희다. 고로 음악가(音樂家)의 사전적 의미를 봤을 때 이들의 업은 청자에게 청각적 유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전하는 수단이 음반에서영상 매체로 확장되면서, 뮤지션은 자신의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이를 시각화 해야하는 또 다른 숙제를 안았다. 음악가가 시각적 심상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의문을 갖는 대신 시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몇몇 뮤지션은 자신의 음악과 함께 고유한 이미지를 유산으로 남기며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 시작점에 1970년대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있다. 그는 음악계의 카멜레온으로 통할 만큼 다채로운 음악을 시도했고, 장르에 따라 그에 걸맞은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컨셉트의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얼굴에 번개 모양을 그리고 극단적인 레이어드 커트를 한 그의 사진은 오늘날 글램록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으며, 특히 헤어스타일은 최근 ‘멀릿 헤어’라는 이름으로 지드래곤, BTS 등 트렌드세터들에 의해 복제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보위와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또 다른 컬처 아이콘으로는 록 밴드 블론디의 보컬 데비 해리가 있는데, 그는 삐죽삐죽뻗친 듯한 헤어스타일에 얇은 아치형 눈썹,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펑크 뷰티 룩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50여 년 전에 찍었을 그의 사진은 어제 찍은 화보처럼 트렌디하다. 1980년대에는 MTV 개국과 함께 ‘보는 음악’의 시대가 열리며, 전설적인 아이콘이 탄생했다. 바로 팝의 여왕 마돈나. 그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거둔 여성 아티스트로, ‘워너비 마돈나’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했다. 성에 보수적이던 1980년대 미국에서 웨딩드레스와 수녀복 등을 입고 금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새빨간 입술로 ‘LikeAVirgin’(당시 미국 사회는 여자가 ‘처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했다)을 부르는 도발적 여성 아티스트에게대중은 열광했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레드 립은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의 영향력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 립스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90년 월드 투어를 앞두고공연 중 땀이 나도 지워지지 않는 레드 립스틱을 만들어달라는 마돈나의 요구에 뷰티 브랜드 맥(M.A.C)이 헌정한 ‘러시안 레드’ 립스틱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랑 받으며 곧 세른 세 번째 생일을 맞는다.
1990년대에는 3인조 힙합 걸 그룹 TLC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성적 권리, 마약과 HIV, 외모 지상주의 등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이들의 노래는 발표 될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고, 브레이드 헤어, 피어싱, 아이시 컬러 아이, 다크 컬러 립 등 그들의 룩 또한 유행했다. 재밌는 점은 그들의 스타일이 지금 Z세대가 추구하는 룩과 흡사하다는 사실. 그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자세히 보라. 언뜻 벨라 하디드나 헤일리 비버, 블랙핑크 같은 오늘날 MZ세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2000년대에 들어서 뮤지션들은 한층 대담한 룩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했다. 대표적 인물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레이디 가가. 먼저 단 두 장의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휩쓸고,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 뮤지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1960년대 재즈 사운드를 팝에 접목한 자신의 음악처럼 레트로와 모던을 오가는 스타일링을 보여준다. 그의 시그니처는 눈꼬리를 과장한 레트로 무드의 아이라인, 살짝 튀어나온 입에 바른 누드 컬러 립스틱과 그 위에 더한 마릴린 먼로의 점을 본뜬 ‘먼로피어싱’ 그리고 과장되게 부풀린 ‘비하이브 헤어’. 이 스타일은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게 영감을 주어 샤넬의 2008 F/W 컬렉션 메인 뷰티 룩이 되기도 했다. 에이미와인하우스의 룩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익숙한 요소의 앙상블이라면, 레이디 가가의 룩은 다분히 미래적이고 실험적이다. 시그니처 룩을 정할 수 없을 만큼 매번 다른스타일을 보여주는 그는 머리카락을 리본 모양으로 만들어 부풀리거나,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색과 선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메이크업 등을 선보였다. 한두 가지로 규정된 스타일은 없지만 이후 실험적인 뷰티 룩이 등장하면 ‘레이디 가가스럽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이콘의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1970년대 말 영국의 밴드 버글스는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로 영상 매체가 음악가를 위협할 거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비디오 시대를 받아들인 뮤지션은 죽지 않고,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에게 영감을 줄 더 많은 음악 아이콘의 탄생을 기대하며. ‘Video Healed the Radio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