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 와이엠씨(Y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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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을 얘기할 때 항상 조심스럽다. 너무 좋은 인물이나 너무 좋은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걸 해칠까봐 두려운 느낌이 있지 않나. 그런 거.”

인터뷰를 잘 마친 후 구교환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다시 보내왔다. 혹시 자신의 답변이 부족하다면 정리해서 글로 다시 보내겠다 했던 참이었다. 서면으로 작성한 답변은 얼굴을 보고 나눈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조금 더 명확하게 쓰여 있다. 구교환은 인터뷰 내내 “제가 말을 잘 못하죠” 하며 초조해했었다. 구교환은 두 번 세 번 생각하는 사람, 나는 한 번 생각하는 사람일 뿐인데.

배우가 기억에 남는 것은 비단 역할의 경중이나 외모처럼 단순한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분위기는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가 만드는 것. 그런 면에서 구교환은 쉬이 잊히지 않는 분위기와 눈빛을 가졌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은 처음 본 대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스크린 속 구교환을 좇게 된다. 5월 말 개봉을 앞둔 영화 <꿈의 제인> 에서 구교환은 트렌스젠더 ‘제인’ 역을 맡았다. 이 영화로 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같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이민지와 함께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꿈의 제인>은 집을 나와 ‘팸’을 이룬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그 아이들을 이끌며 보호하는 제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인물이 되어 불행으로 점철된 이 세상을 헤매는 사람들의 손에 ‘함께’라는 작은 의미를 쥐여준다. 극 중 제인은 텅 빈 눈으로 말한다. “개 같은 인생, 뭐 하러 혼자 살아.” 구교환은 이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이 대사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코트 헥시코 바이 아이엠샵(Hexico by I Am Shop), 셔츠 와이엠씨(YMC), 팬츠 민즈와일 바이 오쿠스(Meanswhile by OHKOOS), 스니커즈 아식스 타이거(Asics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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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받고 가장 깊이 와 닿은 부분이 있었다면? 시나리오 중간 중간의 여백이 좋았다. 포즈라던가 대사가 없는 부분들. 슬랩스틱처럼 보이기도 하는 제인의 행동이 다소 무겁고 힘이 들어가 있는 제인의 대사를 중화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이 재밌어 보였다.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꼽자면 제인이 처음 등장해 “안녕, 돌아왔구나” 하고 첫 대사를 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소현(이민지)에게 하는 말이지만 관객에게 건네는 인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스젠더 중에도 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감독이 왜 구교환에게 이 역할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왜 캐스팅되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이유든 그것을 아는 순간 알게 모르게 그 이유에 갇혀서 표현하게 되더라. 다른 작품 얘기인데 내 찡그리는 미간이 좋아서 캐스팅했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연기할 때 자꾸 미간을 찌푸렸다.

쉽게 만나기 힘든 역할이다. 준비 과정이 달랐나? 준비 과정에서 여느 인물과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섭식 장애를 겪는 제인의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해 촬영 전까지 6개월 동안 몸을 만들고 유지해야 했다. 그때는 굉장히 원망스러웠다. 사실 더 어려웠던 건 정서적인 부분이다. 처음엔 레퍼런스를 찾아보려다가 이 역할에 어떻게 레퍼런스가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보통은 연기할 때 레퍼런스를 먼저 찾아보나? 아니다. 대부분의 역할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역할을 선택하거나 극에 참여할 때는 내가 맡을 인물이 궁금한가 아닌가가 기준인데 제인은 너무나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제인이란 인물을 ‘만들었다’는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제인을 얘기할 때 항상 조심스럽다. 너무 좋은 인물이나 너무 좋은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걸 해칠까봐 두려운 느낌이 있지 않나. 그런 거. 감독님이랑 상의할 때도 실제로 제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나를 맞추려 했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처럼 제인의 대사들에는 대부분 힘이 들어가 있다. 감독의 메시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인물로 보이는데, 그런 제인의 세계관에 얼마나 공감했나. 촬영 내내 제인 같은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종본에서는 삭제 되었지만 제인이 죽어가는 금붕어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살려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대사가 있었다. 어느 하나, 어떤 누구도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는 제인의 마음을 사랑한다. 연기를 하면서는 꼰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좋은 말만 자꾸 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제인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라 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중계하듯이 이야기하니까, 그런 면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당신에게도 제인 같은 사람이 있나? 제인은 인물로 다가올 수도 있고 공간일 수도, 반려견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순간순간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 주변에 참 많은 제인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 제인 같은 사람이야!’ 하기보다는 제인 같은 순간들, 제인 같은 장소. 이렇게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 같다. 나 스스로 제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느 역할이든 연기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지만 제인은 특히 내게 큰 영향을 줬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인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선물 같은 사람.

 

재킷, 팬츠 모두 컬러/비콘 바이 아이엠샵(kolor/BEACON by I Am Shop), 티셔츠 반스아웃피터스 바이 오쿠스(Barns Outfitters by OHK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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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도 하고 있다. 배우일 때와 감독일 때, 각각 어떤가? 연기를 하면 프로덕션이 끝나고 후반 작업에 배우가 참여할 일이 거의 없다. 자연스레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극장에서 선물처럼 재회하는 기쁨이지. 감독으로 참여하면 상영할 때까지 내내 지긋지긋하게 붙어 있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 매력이 있다. 촬영 소스를 가지고 편집하고 호흡을 조절하고 색 보정으로 색을 불어넣는 일련의 후반 작업을 좋아한다. 툴 다루는 것을 놀이처럼 여긴다.

영화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모두 알다시피 연기 분야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굳이 장르를 분리하고 싶지 않다. 전력에 보탬이 되는 역할이고 작업이라면 언제든 감사하다.

또 준비 중인 작업이 있나? 이옥섭 감독과 공동 연출한 서울환경영 화제 트레일러의 후반 작업 중이다. 천우희 배우와 이주영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가족이 된다는 것’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다. 이옥섭 감독과 공동 연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는 장편영화 ‘청년 프로젝트’의 촬영도 앞두고 있다. 작년부터 쓰고 있는 ‘앙팡테리블 프로젝트’의 시나리오 작업도 같이 이어나가고 있다. 말하고 나니 세 작품 모두 이옥섭 감독 과의 공동 작업이다.

메이트 같은 건가? 우리끼리는 혼성 듀오라고 한다. ‘비쥬’ 같은.(웃음)

<꿈의 제인>을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하나? “개 같은 인생, 뭐 하러 혼자 살아” 하는 대사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봐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