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행을 체감하는 척도는 SNS에 등장하는 횟수다. 인플루언서의 패션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고, 브랜드와 가격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애니멀 프린트는 이번 시즌을 대표하는 아주 강력한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멀 프린트 아이템으로 차려입은 스타들이 끊임없이 SNS에 등장하고, 모든 쇼핑몰 상위에 랭크되며 품절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재미있는 점은 이 과감한 패턴이 한두 시즌 만에 불쑥 떠오른 트렌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류가 옷이라는 것을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은 부의 상징이었고, 1960년대 이브 생 로랑이 영화 <열애(La Chamade)>의 주인공 카트린 드뇌브를 위해 레오퍼드 패턴 룩을 디자인한 이후 이는 레드 립과 함께 매혹적인 애티튜드의 모범 답안이 되었다. 반세기 넘도록 꾸준히 유행해온 애니멀 프린트가 이번 시즌 새삼 메가트렌드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주 포멀한 오피스 룩에 익숙한 한국 여성에게 애니멀 프린트는 진입 장벽이 높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이제껏 ‘쎈’ 언니의 전유물이자 도발과 관능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특유의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한층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이 거대한 유행의 시작은 2018 F/W 패션위크에서 이미 감지되었다.
각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올드한 느낌이 드는 작은 패턴 대신 과감하고 큼직한 패턴을 도입해 한층 젊고 다채롭게 변주된 룩을 선보였고, 이는 전 세계 여성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부드러운 캐시미어 소재에 패턴을 더한 채도 낮은 막스마라의 레오퍼드는 결코 ‘섹시함’만이 부각되지 않는다. 일명 청-청 패션처럼 상하의와 액세서리를 모두 애니멀 프린트로 스타일링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세련돼보인다. 이뿐 아니다. 피비 필로의 셀린느를 대체할 브랜드로손꼽히는 빅토리아 베컴의 컬렉션에서 화장기 하나 없는 모델이 입고 나온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의 애니멀 프린트 코트는 시크 그 자체였다.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이 룩은 애니멀 프린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근사한 시도처럼 느껴질 정도. 이 밖에도 레오퍼드 프린트에 선명한 컬러를 입힌 톰 포드의 수트나 스트리트 무드와 잘 어울리는 발렌시아가의 아우터를 보고 있으면 애니멀 프린트에 한계는 없는 듯하다. 올겨울 ‘애니멀 프린트를 관능적으로 소화할 것’처럼 뻔한 패션 공식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우는 편이 낫다. 한층 다양하게 변화한 애니멀 프린트를 참신한 방법으로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