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DIOR

별자리와 신화 등 신비한 소재에서 영감을 받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새 시즌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빨간 망토> <잠자는 숲속의 공주> <분홍신> 등의 동화가 지닌 기묘한 분위기를 영상에 담아냈다. 현대무용가 10명의 기이한 춤으로 시작된 쇼는 곧 베르사유의 웅장한 복도를 비췄고, 동화 속 주인공들이 21세기를 산다면 입었을 법한 옷들이 등장하며 주제를 절묘하게 드러냈다. 무표정하게 걸어 나오는 모델과 역동적인 무용을 교차해 보여주는 영상은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패션과 동떨어진 테마를 고르고, 둘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치우리의 능력이 돋보인 쇼였다.

 

 

발렌티노 VALENTINO

발렌티노는 피콜로 테아트로 디 밀라노(Piccolo Teatro di Milano)로 디지털 관객을 초대했다. 진보적인 문화의 상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한동안 닫혀 있던 이 공간을 다시 개방하는 일이 새 컬렉션이 지닌 도전적인 분위기나 희망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의 연주와 싱어송라이터 코시마의 노래가 어우러진 공간 속으로 꽃과 자연물에서 영감 받은 모티프들과 하우스 특유의 로맨티시즘, 곡선적인 디자인으로 마무리된 쇼피스가 연이어 등장했다. 고전적인 형태와 과감한 디테일, 희망적인 색감의 룩들은 장소가 가진 의미를 충실하게 따르며 드라마틱한 쇼의 대가로 불리는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의 감각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드리스 반 노튼 DRIES VAN NOTEN

드리스 반 노튼은 옷과 움직임만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과장된 포즈와 극적인 디자인을 통해 순수와 열정, 남성성과 여성성, 자유분방하면서도 활력 넘치는 몸짓, 성별의 융합과 포용이라는 키워드를 완벽하게 표현한 것. 이를 위해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로자(Rosas)와 울티마 베스(Ultima Vez)를 포함한 47명의 공연단이 힘을 합쳤고, 패션과 뷰티, 정물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덴마크 사진가 카스페르 세예르센(Casper Sejersen)이 지휘를 맡았다. 가공할 스케일이나 촬영 기법은 없었지만, 예술을 절묘하게 녹여낸 이번 쇼는 한동안 침체됐던 드리스 반 노튼의 부활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2021 에르메스 가을 겨울 파리 패션위크 HIGHLIGHTS HERMES 2021 F/W FASHION WEEK PARIS

ⓒHERMÈS

에르메스 HERMÈS

“팬데믹 시대에 어떻게 창의력을 발휘할 것인가?” 나데주 바니 시불스키가 새 시즌 컬렉션을 앞두고 던진 질문은 3막의 퍼포먼스라는 답으로 귀결됐다. 뉴욕-파리-상하이를 잇는 독특한 형태의 프레젠테이션은 안무가 매들린 홀랜더(Madeline Hollander), 구 이아니(Gu Jiani), 그리고 현대무용과 패션에 애정을 드러내온 영화감독 세바스티앙 리프쉬츠(Sébastien Lifshitz)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이들은 강렬한 안무와 역동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메종이 주목하는 테마인 ‘여성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고, 직선적이며 대담한 새 시즌의 컬렉션 피스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2021 루이 비통 가을 겨울 파리 패션위크 HIGHLIGHTS LOUIS VUITTON 2021 F/W FASHION WEEK PARIS

ⓒLOUIS VUITTON

루이 비통 LOUIS VUITTON

포르나세티 아틀리에와의 협업,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에서 받은 영감, 루브르의 미켈란젤로 갤러리라는 쇼 베뉴가 주는 웅장함.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다양한 요소를 통해 패션과 예술의 결합을 시도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고대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형태와 곳곳에 더한 기하학적 패턴, 벽화를 모티프로 한 드로잉 디테일이 테마와 완벽한 합을 이룬 것. 이뿐 아니라 니콜라는 쇼를 며칠 앞두고 해체한 전설적인 일레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리믹스 음악으로 현대적인 분위기까지 가미하며 쇼에 특별한 기운을 더했다.

 

 

2021 샤넬 가을 겨울 파리 패션위크 HIGHLIGHTS CHANEL 2021 F/W FASHION WEEK PARIS

ⓒCHANEL

샤넬 CHANEL

샤넬의 새 시즌은 ‘대조’에서 출발한다. 부피가 큰 코트와 대조되는 얇은 스타킹, 관능적인 분위기와 대조되는 편안한 실루엣처럼 형태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에서의 대조 말이다. “나는 대조를 좋아한다. 그래서 볼륨감 넘치는 겨울 시즌 옷을 선보일 장소로 작은 공간을 원했다.” 쇼를 두고 버지니 비아르가 남긴 짧은 코멘트는 주제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겨울밤의 스키 캠프를 테마로 한 쇼장에 줄지어 등장한 컬렉션 룩들은 트위드와 스커트 수트, 체크 패턴, 블랙 컬러에 이르기까지 하우스가 오래도록 지켜온 고급스러운 요소를 총망라한 모습이었지만, 어울리지 않을 법한 털 부츠나 반항적인 메이크업과 만나 테마를 뒷받침하듯 우아하면서도 쿨한 대비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