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냄이 미덕인 시대다. 잘 먹고, 잘 고르고, 잘 사고, 잘 향유할 줄 아는 것은 일종의 능력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번 시즌을 장악한 로고 트렌드는 일정 부분 이런 현상에 빚지고 있다. 디자이너가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정체성을 새겨놓은 옷을 사는 일은 ‘좋은 취향을 지닌 사람’이라는 긍정적 평가로 이어진다. ‘VETEMENTS’이라고 적힌 레인코트에 비싼 값을 지불함으로써 한 벌의 레인코트와 쿨한 이미지를 동시에 소유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더 직접적인 원인은 유스 컬처와 스트리트 무드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다. 슈프림과 후드바이에어(HBA) 등 스트리트 브랜드가 지닌 방대한 로고 플레이의 유산과 마니아층을 뎀나 바잘리아의 베트멍과 발렌시아가, 루이 비통 × 슈프림 등이 계승했고, 그 주체가 이제는 수십 년간 우아함을 추구해온 브랜드들로 확대된 것. 백, 모자, 드레스 등 곳곳에 기하학적인 로고를 아주 영민하게 활용한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을 비롯해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그래픽 로고를 패턴으로 활용한 펜디와 디올, 막스마라가 대표적인 예다.
이유가 무엇이건 누군가가 일률적인 잣대로 자신을 판단하는 게 싫어서 로고리스 브랜드를 고집하는 이들, 혹은 아는 사람만 아는(이를테면 메종 마르지엘라의 스티치 같은) 표식으로 패션계의 진성 팬(?)을 구분하는 이들에게는 이 트렌드가 경악할 만한 일일 것이다. 옷 위에 장식되는 건 오직 섬세하게 수놓인 비즈나 레이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트 쿠튀르 수호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러나 로고가 드러난 옷을 입은 누군가를 볼 때 그 브랜드의 힙한 분위기를 겹쳐 보게 되는 ‘로고 플레이의 마법’을 경험한다면? 장담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재킷이나 드레스에 새겨진 몇 개의 잉크 덩어리에 마음을 사로잡히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