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꼭 맞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성보람, 이영균 씨 부부 그리고 반려견 ‘네리’가 사는 집은 그래서 더 신기하다.작년 11월에 결혼한 부부는 과천의 13년 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했다.“연식이 꽤 된 아파트라서 리모델링을 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새것처럼깨끗하고 깔끔한 집을 원하지는 않았어요. 공사 일정도 촉박했는데,다행히 알고 지내던 라이크라이크홈 손명희 대표에게 의뢰할 수 있었죠. 제가 원하는 분위기를 잘 아셨거요.” 아내 보람 씨의 말처럼 이집은 깔끔하고 단정하지만 포근한 느낌이 깃들어 있다. 그녀는 매거진 에디터와 인테리어 회사를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 겸 작가의작품을 엄선해서 소개하는 ‘포에지’라는 브랜드의 운영자다. 남편 영균 씨 역시 매거진 에디터였는데, 현재는 부동산 이메일 뉴스레터 부딩의 대표다. 일을 하면서 만난 부부는 서로의 취향과 강점을 잘 알고있었다. “전체적인 스타일은 아내가 정했고, 전기 배선처럼 디테일한부분은 제가 꼼꼼하게 살폈어요. 각자 잘하는 부분을 신경 썼죠.” 남편은 서로 지닌 강점은 다르지만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정말 필요한지따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집에 잘 어울리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는 점이 서로 잘 맞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 집은 꼭 필요한것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아파트에서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스타일도 그렇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동선이나 신발장 겸 수납장 디자인, 그리고 부엌에서 그런 느낌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시각적으로 편한 느낌을 중요하게생각해서 벽의 색감도 화이트가 아닌 크림색으로 선택했고, 나무 가구가 많죠.”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어조로 집을 소개하는 아내를 닮아 이 집 또한 편안한 분위기지만 신경 쓴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이 아파트는 지어질 당시 현관에 전실이 딸려 있었는데, 부부는 이를 복도처럼 터서가로로 길게 수납장을 만들었다. 덕분에 공간을 한층 여유롭게 사용할수 있고, 전실 부분을 넓은 현관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또 엄마가 결혼선물로 주신 두 그루의 올리브나무를 보기 위해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인앞 베란다의 문을 투명하게 만든 점이나 인테리어를 방해하는 스탠딩 에어컨을 두고 싶지 않아서 거실에도 벽걸이 에어컨을 선택한 점, 모든 전선을 벽 안에 매입해서 진정한 의미의 벽걸이 TV를 실현한 서재, 데드스페이스에 선반을 짜 넣어 책장으로 활용한 점 등은 인테리어 요소로 참고할만한 부분이다.

거실

TV 대신 오디오 시스템을 둔 거실. 집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거실에는 나무 가구와 패브릭 소파를 두었다.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부부는 거실 테이블에서 업무도 보고 식사도 한다.

편안하지만 정적인 분위기에 생동감을 주는 존재는 반려견 네리다.1m짜리 목줄에 묶인채 가까스로 구조된 유기견이었다. 19년이나 키웠던반려견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보람 씨는 운명처럼 네리에게끌렸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입양했다. 이렇게 순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착한 눈망울을 가진 네리는 원래부터 식구였던 것처럼 이 집에 꼭
어울린다. “공사 전에 입양 계획이 있었다면 네리를 배려해 소재에도 신경을 썼을 텐데, 리모델링 후에 입양하게 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해요. 대신 부엌 안쪽의 다용도실 문을 없애고 냉장고만 두어서 공간에 여유가 생긴 덕분에 네리의 방석과 식기를 둘 수 있었죠. 저희 부부가 강아지를 좋아해서 언젠가 반려견을 입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네리가 운명처럼 찾아온 거죠.” 보람 씨의 말을들으며 네리를 보니 세상 편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거기에 음악감상을 즐기는 남편이 거실 스피커로 틀어준 음악까지 더해지니 완벽하게 평온한 어느 오후의 모습이 완성됐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남편과 아내에게 집의 의미가 어떨지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힐링의 공간, 쉼의 공간 등으로 얘기하잖아요. 물론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부딩을운영하면서 느끼는 건 집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는점이에요. 너무 감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제가 부딩을 운영하는 이유도 그렇고요.” 영균 씨와 달리 아내 보람 씨의 의견은 좀 다르다. “남편과함께 부동산 공부를 하다 보니 집이 투자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것을알게 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집은 제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줘요. 하루의 시간을 단정하게 접고, 갈무리하는 공간이야말로 우리 가족의 포근한안녕을 의미하니까요. 제가 예쁘다고 주워 온 조개껍데기가 다른 이에겐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집 또한 사는 이에게 특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세 식구가 이곳에서 엮고 있는 페이지가 날아가지 않게 지그시눌러주는 문진과 같은 역할을 하죠.”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들처럼 가지고 있는 생각과 장점은 다르지만 이들에겐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네리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