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런웨이를 물들였던 채도 높은 강렬한 핑크는 봄의 생명력을 닮은 라임 그린과 베이비 블루에 올봄 트렌드 컬러 자리를 내줄 듯하다. 팬톤이 선정한 2023 S/S 트렌드 컬러 리포트에 따르면 채도 높은 컬러가 주를 이룬 지난겨울과 달리 올봄에는 부드러운 파스텔컬러가 키 컬러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이를 증명하듯 구찌 쇼의 쌍둥이 모델들은 발끝까지 베이비 블루 컬러 일색의 의상을 입었고, 아크네 스튜디오는 커다란 블루 리본과 시어한 소재를 결합해 파스텔컬러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넘어 관능미까지 담아냈다. 그 반면에 여전히 채도 높은 컬러를 사랑하는 디자이너들은 라임 그린을 메인 컬러로 선택했다. 라임 그린을 시그니처 컬러로 활용해온 프라다를 필두로 미우미우, 스포트막스, 펜디 등 수많은 브랜드에서 네온에 가까운 그린을 메인 팔레트로 활용했으며, 로에베는 가슴에 생기 넘치는 초록 꽃을 피워 봄의 시작을 알렸다.

 

Flappers

1920년대에 유행한 플래퍼 스타일이 1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을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말괄량이 같은 플래퍼의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프린지 장식은 이번 시즌 21세기 플래퍼들을 위해 한층 더 색다른 도약을 꾀했다. 치마 밑단에 머무르던 프린지를 코트 깃에 단 플래퍼 스타일 전신 격의 샤넬과 소맷부리에 프린지를 겹겹이 배치한 프로엔자 스쿨러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제이슨 우, 질샌더는 프린지에 글리터를 가미해 보다 화려하고 도회적인 무드를 연출했다. 팬데믹의 종식을 앞둔 지금, 새 시대의 플래퍼 룩을 입고 재즈 파티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Newtro Queen

패션 아이콘 그레이스 존스의 스타일이 떠오르는 후드 드레스가 런웨이에 대거 등장했다. 알라이아, 생 로랑, 페라가모, 알베르타 페레티 등 다수의 브랜드에서 그를 향한 경의를 담아 선보인 이 드레스는 귀여워 보일 수 있는 후드를 몸에 달라붙는 드레이핑 드레스와 결합한 디자인으로 우아하면서도 시크한 인상을 준다. 이 매력적인 실루엣의 드레스는 이미 벨라 하디드, 마고 로비, 블랙핑크 로제 등 할리우드와 국내 스타들의 시상식 패션으로 선택받았다. 레드카펫 외에 일상생활에서 데일리 아이템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겠지만,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서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당신을 구제해줄 아이템이라는 점은 확연한 사실이다.

 

 

 

Neo-Gothic

럭셔리 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서브컬처인 고스족 패션에 주목했다. 디올 런웨이에는 빅토리아 시대가 연상되는 고풍스러운 드레스의 향연이 이어졌고, 베르사체 쇼에서는 유령 신부 같은 차림의 모델들이 수천 개의 양초로 꾸민 런웨이 위를 잇달아 걸어 나왔다. 한편 고딕의 황제라 불리는 리카르도 티시는 가장 능통한 분야인 고딕과 로맨티시즘을 절묘하게 뒤섞은 컬렉션을 완성해 그의 마지막 버버리 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의 주인공 ‘웬즈데이’도 고딕 룩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스타일을 선보였으니 이 고혹적인 패션은 이번 시즌 트렌드로 더욱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Pants-Less

2023 S/S 쇼 룩 중 가장 화제가 된 건 단연 보테가 베네타의 17번 룩이 아닐까. 골반 위까지 올라오는 네이비 스웨터에 하의로는 오직 스타킹만을 신은 파격적인 룩은 말 그대로 ‘하의 실종’ 패션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이 난감한 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오를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빅토리아 베컴과 카이트 쇼에도 하의로 스타킹만 신은 모델들이 등장했고, MSGM은 속옷을 셔츠 위에 덧입은 과감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 트렌드는 하의로 브리프만 입은 힙스터들의 스트리트 패션이 목격되면서 이미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동시대 유행을 선도하는 켄달 제너 역시 도톰한 스웨터 아래 검정 스타킹만 신은 채 거리를 활보했으니, 서랍 안의 70 데니어 스타킹과 어울리는 적절한 펌프스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

 

 

 

Mood Indigo

매 시즌 빠지지 않고 트렌드로 부상하는 데님 아이템. 이번 시즌에 그 존재감을 독보적으로 뽐내는 이유는 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데님 활용법 덕분이다. 블루마린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른 듯한 십자가 모양 톱과 로라이즈 팬츠를 매치해 Y2K 무드를 이어갔고, 디젤은 컬렉션 룩 대부분을 데님으로 제작했으며 팬츠 디테일을 본뜬 다양한 형태의 데님 슈즈까지 선보였다. 이토록 한계와 규율 없이 변주한 런웨이 위의 데님 아이템을 보노라면 지난해 3월 줄리아 폭스가 하이웨이스트 데님 팬츠를 브라톱과 로라이즈 팬츠로 리폼해 매치한 획기적인 스타일링이 떠오른다. DIY 데님 트렌드에 도전하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가위와 오래된 데님 팬츠, 그리고 약간의 용기면 충분하다.